[제11회 LG배 세계기왕전] 백의 삼중고

〈제8보〉(102~116)=바둑은 씨줄과 날줄의 ‘교차점 경쟁’이다. 361로(路) 공간 위의 낙하 지점을 결정하는 과정은 ‘시간’이란 보급품을 요구한다. 그 옛날 사랑방 바둑엔 없었던 시간 제한 개념이 도입되면서 현대 바둑은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4차원 게임으로 재탄생했다. 난국을 헤치거나 불리한 국면을 뒤엎기 위해 프로들은 한정된 시간을 제 살 갉아먹듯 소진해 간다.

105까지 가볍게 수가 난 모습. 106으로 참고 1도 1의 치중은 6이 선수여서 잡는 수가 없다. 그렇다고 참고 2도 3 이하의 변화 역시 4의 교타(巧打)가 있어 백이 망해버린다. 이 대목에서 백은 때 이른 초읽기에 돌입했다. 주어진 3시간 중 2시간 55분이 경과했다는 뜻이다. 우세한 흑의 잔여 시간은 1시간 5분. 병력도, 식량도 풍부하다.

110까지의 패(覇)가 최선이자 필연. 흑으로선 ‘꽃놀이 패’란 이름의 응원부대까지 얻은 격이다. 하지만 승부란 묘한 것. 10명이 뛰는 축구 팀이 11명을 상대로 종종 놀라운 역전승을 거두기도 하지 않던가. 줄을 이어 찾아오는 호재(好材)가 어째 오히려 으스스하다. (113…105, 116…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