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전 영화 '취화선'이 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날, 뒷풀이장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30여년 영화 인생의 한이 풀렸다"며 눈시울을 붉히던 태흥영화사 이태원 사장. 그가 '기자단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안성기 캐스팅 일화'를 소개했다.
국민배우를 조연으로 캐스팅하자니 말 꺼내기도 어려웠을 터, "조연인데, 네가 꼭 필요하다"는 이 사장의 직설화법에 안성기의 대답은 간단했다. "해야죠"였다.
한 고개 넘고 나니 더 높은 고개가 남았다. 개런티 협상(?) 이었다. "많이 줄 돈이 없다. (전작에 비해) 3분의 1만 깎아주라." 막상 말을 해놓고 보니 떨리더란다. 산전수전 다 겪은 제작자로서도 결코 쉽지 않은 말이었다.
그런데 안성기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래야죠."
안성기는 작품 제작 실정에 맞춰 개런티를 조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개런티가) 완만한 상승곡선과 하락곡선을 그리길 원한다"는 그의 말은 현장에서 정확히 일치된다. 지난해엔 저예산 영화의 목소리 연기자로 개런티 없이 출연하기도 했다.
영화 시장이 얼어붙었다.'돈줄이 말랐다'는 하소연이 여기저기서 쏟아져나온다. 지난 2006년 한해 한국 영화는 1000억여원의 손실을 입었다. 개봉된 영화 118편중 겨우 20여편만이 적자를 면했다.
그런데도 스타배우의 몸값은 치솟기만 한다. 한번 오르면 떨어지는 법이 없다. 배우 세계에서는 최소한의 시장논리마저도 빗겨나가는 모양이다.
현재 특급 배우들의 출연료는 최소(?) 5억원. 남녀 주연배우 개런티만 10억원이다. 얼굴 좀 알려진 조연 배우들까지 포함하면 그럭저럭 20억원이 출연료라는 명목으로 빠져나간다.
또 있다. 러닝 개런티도 고통분담과는 거리가 멀다. 제작 여건에 맞게 개런티를 낮춘 뒤 영화가 잘되면 보너스 형식으로 받는게 아니라 받을 돈은 다 받고 흥행에 성공하면 그때부터 또 챙겨간다.
개런티 협상은 에누리 없이 제대로 하면서, 출연 분량이 적다며 크레딧에는 '우정출연'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20여년간 충무로에 몸담았던 제작자 A씨는 올해 들어 아예 손을 놓았다. 그는 "배우들이 영화가 망했다고 개런티 깎아줬다는 이야기를 들어본적 있느냐. 스타급으로 캐스팅하려면 최소관객 200만명은 넘어서야하는데, 당해낼 재간이 없다"면서 "요즘은 쉬는 게 돈을 버는 일"이라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최근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상당수는 한국영화 위기의 주범으로 높은 스타의 출연료를 꼽았다. SBS FM '뉴스앤조이'가 전국 19세 이상의 남녀 61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너무 높은 배우 출연료'가 한국 영화의 위기를 자초했다는 의견이 43.1%로 가장 많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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