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LG배 세계기왕전] 운명의 힘

〈제12보〉(181~196)=한 판 바둑의 흐름을 지켜보면서 승패가 어떤 ‘운명의 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숱한 사연과 곡절을 거쳐 결국 어느 한 팀의 승리로 수렴되는 과정만큼 전율스러운 게 또 있으랴. 오죽하면 조치훈 같은 희대의 승부사조차 “돌아보면 모든 것이 운명”이란 독백을 남겼겠는가.

바둑은 돌고 돌아 이제부터의 승부. 184로 지켜 반 집 가량 백이 두텁다는 진단이다. 191까지 선수하고 192로 이은 수가 패착의 굴레를 뒤집어 썼다. 참고도를 보자. 백 1로 차단하면 중앙 흑이 아직 못 산 모습. 흑 2엔 3으로 계속 추궁한다. 이 싸움은 12에 이르러 ? 자리의 한 수 늦은 패(覇)가 된다. 하지만 백은 패에 져도 자체로 빅이고, 중앙 흑은 못 살아(흑 A면 백 B) 흑이 전멸하게 된다.

따라서 흑은 참고도 2로 3에 두고 백 4, 흑 2로 타협하는데 이것은 여전히 백의 ‘반 집 우세’라는 것. 운명은 항상 이런 식으로 승부사의 가슴에 잊지 못할 상처를 남긴다. 195 때 백이 ‘가’에 잇지 못하는 것도 비극. 이유는 다음 보에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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