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왕, 내가 품겠다

원성진(22) 七단은 ‘비운의 사나이’로 통한다. 발군의 실력이 무색하게 결승에만 오르면 눈물을 삼켜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전과는 ‘금메달’ 1개에 ‘은메달 6개’. 지난해 말 ‘마스터즈 전신(戰神)’서 정상을 밟았다지만 일반 팬들에겐 생소한 대회다. 번듯한 정규 무대에선 아직 무관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백홍석(21) 五단은 거꾸로 ‘신데렐라 과(科)’에 속한다. 지난 연말 제10기 신예10걸전 결승서 또 한 명의 신인 유망주 이영구를 셧아웃 시키고 우승했다. 유례가 드문 ‘첫 도전·첫 타이틀’이었다. 그 직후 성인 기전인 십단전서 안조영에 패해 우승을 놓치긴 했지만 우승권 타율(?)이 엄청 높은 기사로 자리잡았다.

이 둘이 난생 처음으로 결승전 조합을 이룬다. 12일 시작될 제17기 신인왕을 건 3번기다. 요즘 신예 기전의 수준과 권위는 성인 타이틀전 뺨칠 정도. 날고 기는 청년 맹장들의 치열한 경쟁의식이 엄청난 열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서도 난전 끝에 백홍석은 2년 전 신예 2관왕에 올랐던 강동윤과 지난해 신인왕 허영호 등을, 원성진은 난적 김주호에 이어 최근 국수에 오른 윤준상 등을 각각 눕히고 결승까지 왔다.

신인왕전은 특히 원성진의 입장에서 각오가 새로울 수밖에 없다. 지난 해 허영호에 막혀 분루를 삼키는 등, 이번으로 세 번째 결승 무대를 밟기 때문. 백홍석은 백홍석대로 남다른 야심이 있다. 이번에 우승을 추가한다면 신인 기전은 오직 신예연승최강전 1개만 남는다. 지금까지 이세돌 1명만 거쳐간 신인 기전 그랜드슬램을 노릴 수 있게 되는 것.

두 기사 모두 요즘 펄펄 나는 중이다. 올 들어 원성진은 21승 5패, 다승 2위(4월 9일 현재)를 달리며 천원전 물가정보배 등의 무대서 본선에 진입했다. 4월 종합 랭킹은 9위. 백홍석은 올해 10연승 포함 20승 8패로 다승 3위에 나서 있다. 종합 랭킹은 14위에 머물고 있지만 십단전 준우승, 천원전 물가정보배 본선 등 기세가 등등하다.

한 살 차이의 신인 그룹 동료이면서도 둘의 성적 사이클은 대조적이다. 원성진은 2000년대 진입 이후 전체 성적에서 당당 다승 6위(334승 144패)에 올라있다. 다승은 판 수가 많아야 하므로 활약도의 중요한 지표가 된다. 반면 원성진에 비해 3년 이상 입단이 늦었던 백홍석은 입단 6년째인 지난해 갑자기 ‘폭발’한 케이스. 삼성화재배 4강, 신예10걸전 우승 등 돌풍 속에 연말 승률왕과 신예 기사상을 석권하자 “이런 인재를 바둑리그에서 아무 팀도 안 뽑은 것은 난센스”란 소리가 터져 나왔었다. 둘은 작년 승률왕 자리를 놓고도 12월 말까지 대접전을 펼친 끝에 백홍석이 1위, 원성진이 2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기풍도 대조적이어서 백홍석은 호전적 ‘한 방’형인 반면 원성진은 끈질긴 계가바둑에 매우 강하다. 통산 전적은 2002년 두 판을 두어 1승 1패를 기록했다가 2004년 백홍석이 승리, 2승 1패로 앞서 있다. 각자 10분에 40초 초읽기 3회가 주어지는 속기 기전. 2500만원의 ‘전리품’은 과연 어느 쪽 품에 안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