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기자의 촉촉한 시선] ‘동갑내기 과외하기 2’ 신사자성어 놀이

다음 주(19일) 개봉하는 코미디 ‘동갑내기 과외하기 레슨2’의 영화사가 보도자료 하나를 보내 왔다. 인터넷에서 ‘신 사자성어(四字成語) 놀이’가 열풍이라는 것이다. 가령 이런 예다. ‘부자유친’은 “부잣집 아들과 유난히 친하게 지내라”는 뜻이고, ‘멍청한 놈’은 “멍따와 청단을 한 놈이 다 해먹는다”는 식으로 언어를 황당무계한 유희의 대상으로 삼는 놀이 말이다. 일본 재일교포 소녀에게 동갑내기 한국 대학생이 엉터리로 사자성어를 가르친다는 영화의 설정을 홍보하려는 의도였다.

처음 든 생각은 웬 철 지난 마케팅이냐는 것이었다. 사자성어 놀이는커녕, 소위 ‘인터넷 외계어’가 유행했던 것도 이미 4~5년 전의 일이 아닌가. 영어 알파벳과 아라비아숫자, 심지어 러시아 문자의 모체인 키릴 문자까지 섞어 쓰며 마치 난수표를 읽는 듯한 곤혹스러움을 줬던 그 외계어 말이다(가령 ‘실ㅁБㅎĦ¤¤¤¤¤쓰’는 ‘실망했어’란 뜻이다. 의미보다는 겉모양에 바탕을 둔 독해다. 난이도가 더 높아지면, 30대 이상은 이해하길 포기하는 게 마음 편하다).

그런데 그 사자성어놀이 이벤트가 열린 인터넷 페이지(boom.naver.com)를 찾았다가 조금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열풍까지는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네티즌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외계어’의 인기는 한풀 꺾인 지 오래라는 것이었다. 20대 초반의 후배에게 물어보니, 이제는 자기 또래들도 외계어를 불편하게 여긴단다. 쓰기도 골치 아프고, 해석하기도 귀찮다면서. 반대로 사자성어 놀이는 왠지 향수를 자극하는 묘한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30대 이상 세대에게 ‘태권V’와 ‘쫀득이’가 복고의 트렌드로 귀환했던 것처럼, 20대에게는 ‘사자성어 놀이’가 벌써 추억의 놀이가 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어떤 세대에게는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던 유행이 말이다.

반대로 이런 생각도 떠올랐다. 사실 인터넷 이전까지 ‘언어 놀이’는 개그맨만의 전유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라를 잃은 경험이 있는 우리에게 언어는 주시경 이래 100여 년 동안 감히 농담으로라도 훼손하기 어려운 상징체계였을 테니까. 하지만 워드프로세서 이후 문자가 기계화·전자화되는 과정에서 젊은 세대들은 처음으로 언어를 ‘장난감’으로 즐기기 시작했고, 이미 어떤 극단(極端)까지 경험했으며, 마침내 안정적인 단계로 돌아오고 있는 것 같다. ‘문화지체’가 아니라 ‘언어지체’가 더 심각한 문제로 여겨졌던 몇 년 전이 새삼스럽다. 어른들은 모르는 말, 청소년은 모르는 말을 서로 알려주는 ‘상상플러스’ 같은 프로그램이 여전히 인기인 것을 보면, 세대 간의 타협도 시도되고 있는 것 같고.

이제 젊은 세대들의 인터넷 언어(혹은 축약어)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외계어로 치부해 버린 당신이라면, 일단 한번 ‘열공’(열심히 공부)해 보시기를. 이 독특한 언어들이 지닌 특유의 친밀함을 즐길 기회다. ‘동갑내기 과외하기 레슨2’의 물 건너온 소녀 준코도 혀 짧은 한국어로 ‘열공제자’를 자처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