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가 낳은 영화적 아들 ‘굿 셰퍼드’

영화의 배경은 대(對) 쿠바 비밀작전을 벌이고 있는 1961년의 CIA다. 이 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책임자 윌슨은 조직 내에 스파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이제 카메라는 과거와 현재를 왕복하며 윌슨의 인생 궤적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단지 첩보영화로 자신의 장르를 국한하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고백하기 시작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버지를 목격한 소년에게 새겨진 영혼의 상처, 국가과 민족이라는 대의명분이 언제나 자의적으로 조작될 수 있다는 사실, 선한 목자와 단순 경비견(셰퍼드)의 삶이라는 것이 사실상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진리를 ‘굿 셰퍼드’는 나지막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선언한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를 ‘내 인생의 영화’로 꼽고 있는 당신. 배우 로버트 드 니로가 연출한 ‘굿 셰퍼드’(The Good Shepherd·선한 목자)를 놓치지 말 것. 예일대 출신 비밀요원이었던 에드워드 윌슨(맷 데이먼)을 통해 CIA(미국 중앙정보국)의 역사를 담아내고 있는 이 비정한 드라마는, 사실 표면적으로는 이 ‘마피아 3부작’과 겹치는 부분을 찾을 수 없다.

자신의 모습을 공개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모인 이름들이 더 화제였다. 연출 데뷔작이었던 ‘브롱크스 이야기’ 이후 드 니로가 13년 만에 직접 감독을 맡은 작품이라는 점, 맷 데이먼·앤젤리나 졸리 등 주연뿐만 아니라 마이클 갬본(‘해리포터’ 시리즈의 덤블도어 교장), 조 페시(‘좋은 친구들’), 존 터투로(‘바톤 핑크’), 알렉 볼드윈(‘디파티드’)까지 한 자리에 모아 놓은 1급의 캐스팅, 그리고 제작자 코폴라에 시나리오 작가 에릭 로스(‘포레스트 검프’)까지. 하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 눈밝은 관객이라면 이 육중한 스릴러가 ‘대부’의 거대한 뿌리에서 태어난 또 다른 자식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문학을 사랑하던 순진한 대학생 윌슨이 국가 정보기관의 창설멤버로 선발된 뒤 타락해가는 과정은, 애국심 강한 청년장교였던 마이클 콜레오네(알 파치노)가 아버지의 조직 속에서 손에 피를 묻히는 모습과 고스란히 포개진다. 코폴라가 세심하게 빚어낸 마피아의 초상처럼, 드 니로가 이어받아 그려내는 CIA는 비밀과 거짓말, 그리고 음모와 배신의 온상이다. 가부장을 정점으로 절대복종하고, 아버지의 죄가 대를 이어 유전된다는 비극적 설정까지, 두 작품은 도화지를 반으로 접어 만든 데칼코마니처럼 정확한 대칭을 이룬다.

이 영화에서 CIA를 창설하는 핵심 인물들은 예일대학의 유서 깊은 비밀 동아리 ‘해골과 뼈’(Skull and Bones)의 선후배로 묘사된다. 실제로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 상원의원을 배출한 이 파워엘리트 서클의 영화 속 이전투구를 보며, 마피아건 최고대학의 수재모임이건 권력의 속성은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한다.

결혼 2주일 만에 전장으로 떠나버린 윌슨 탓에 홀로 남아 아이를 키우는 클로버 역의 앤젤리나 졸리 역시 ‘대부’에서의 다이앤 키튼을 연상시킨다. 발산하기보다 삭여야 하는 캐릭터를 맡은 졸리는 남자들에 의해 훼손되고 절망하는 여인의 삶을 무난하게 녹여냈다.

드 니로의 안정된 연출은 자신의 영화적 스승이자 평생 동지였던 코폴라와 마틴 스코세지에게 상당부분 빚지고 있을 것이다. 무려 2시간 47분에 이르는 러닝타임 탓에, 어떤 이는 “드 니로에게 시계가 없었던 모양”이라고 농을 던졌다. 인내력 많지 않은 요즘 젊은 관객들에게는 너무 고전적인 작법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늘 한발 늦게 깨닫는 진리는, 클래식의 생명력이 가장 길다는 것. 스파이의 신분을 알게 된 윌슨이 내리는 최종 결정을 보며, 당신은 이 영화를 ‘내 인생의 영화’ 리스트에 추가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올해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인 예술공헌상을 받았다. 1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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