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3, 내면의 사악함과도 싸워야하는 영웅

고뇌하는 수퍼 히어로. 세 번째 돌아온 거미인간이 선택한 자신의 정체성이다. ‘스파이더맨 3’(Spider-Man 3)는 블록버스터의 외투를 입은 성장영화 같다. 1편과 2편이 각각 탄생설화와 멜로드라마에 초점을 맞췄다면, 3편은 자신의 존재 내면의 사악함과 겨루는 스파이더맨(토비 맥과이어)에게 포커스를 맞춘다.

여자친구 메리 제인(키어스틴 던스트)에게는 정체를 밝힌 청년 피터. 이제는 뉴욕 하이드 파크에 거대한 거미줄을 만들어 놓고 그 위에 누워 키스를 즐길 만큼 여유다. 그 낭만적인 장면 뒤로 운석 하나가 추락하고, 사람 크기만한 이 돌로부터 정체 모를 검은색 물질 하나가 흘러나온다. 자신이 기생하는 숙주의 마성(魔性)을 자극하는 몹쓸 존재다. 스파이더맨의 의상은 흑빛으로 변하고, 뉴욕의 영웅은 시민들의 골칫거리로 추락한다.

3편 볼거리의 압권은 새로운 악당 ‘샌드맨’(토마스 헤이든 처치)과의 대결이다. 분자가속기에 잘못 휩쓸려 모래인간이 되어버린 기구한 운명의 이 탈옥수는, 기계촉수 8개를 달고 스크린을 누볐던 전편의 ‘닥터 옥토퍼스’(알프레드 몰리나)를 압도 한다. 역시 검은 물질에 감염된 베놈(에디 브록)과 1, 2편에 이어 등장하는 친구이자 숙적 해리(제임스 프랑코)와의 대결도 아찔한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올 여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1번 타자’로는 큰 부족함이 없어 보이지만, ‘스파이더맨 3’의 적은 사실상 내부에 있다. 섬약한 모범생 피터와 지구를 구하는 영웅 사이의 절묘한 균형이 이 시리즈 성공비결의 큰 축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참신했던 매력이 감가상각되고 있는 중이다. ‘엑스맨’과 ‘배트맨’을 본 이들에게 ‘고뇌하는 수퍼 히어로’가 새롭지 않다는 것도 문제. 더 강한 자극의 드라마와 볼거리를 만들어내야 하는 속편의 숙명이 거미인간에게도 딜레마를 안겨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