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집은 무엇입니까?

앤디 워홀 같은 팝아티스트들은 미술작가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을 꺼렸다. 도널드 저드 같은 미니멀리즘 작가들은 단순한 박스처럼 간결한 조각을 해서 미술의 복잡성을 내던졌다. 이런 팝아트와 미니멀리즘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서양 현대미술을 주도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한편에서는 이런 미술이 지닌 무심함과 가벼움을 싫어한 작가들도 있었다. 이들은 다시 작품을 통해 작가 개인을 드러냈고 관객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다. 국제갤러리 신관 개관전으로 문을 연 ‘루이즈 부르주아: 추상’(6월 29일까지·02-733-8449)은 이런 작가들 중 특히 개성이 강한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96)를 다루는 국내 네 번째 전시다. 그는 지금까지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현대미술의 거장이다.

부르주아의 아버지는 아이들의 가정교사들과 상습적으로 불륜 관계를 맺어 어린 부르주아에게 상처를 줬다. 부르주아에게 ‘집’은 갈등과 모순이 가득한 곳이며 그는 작품을 통해 개인사를 숨김 없이 드러낸다. ‘출구 없음’(1989)이라는 설치작품은 아무 곳으로도 연결되어 있지 않고 덜렁 허공을 향해 뚫린 계단이다. 도망가고 싶지만 갈 곳이 없는 불안한 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굴집’(1986)은 피난처로서 집을 상징하는 모양이다. ‘밀실’(19 98)은 그가 평생 다뤄온 가족과 집의 주제를 집약한 대표적 연작이다. 감옥처럼 높은 울타리를 둘러 쳐서 관객의 관음증을 불러일으킨다.

고통스런 어린 시절을 보냈고 페미니스트였기에 부르주아의 작품은 성적 이미지를 암시한 것이 많고 때론 괴기스럽다. 얼마 전 재개관한 신세계 백화점 본점에 있는 대형 거미 조각이 바로 루이즈 부르주아 작품이다. 하지만 갤러리 전시이다 보니 이 전시에는 실제 부르주아의 특징이 더 잘 나타나는 괴기스러운 설치작품보다는 비교적 소장하기 좋은 예쁜 초기 조각들이 더 많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