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혜선의 손가락 ‘악마’를 두드리다

“한 마디로 고난이죠. 그에게 과연 자비로움이라는 것이 있을까요?”

피아니스트 백혜선(42)은 연신 ‘걱정’이라고 하면서도 특유의 너털웃음은 잃지 않았다. 그는 다음달 러시아의 명(名)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미하일 플레트네프가 이끄는 러시아 내셔널 오케스트라(RNO)의 내한 공연 협연자로 선정됐다.

이번엔 지휘를 맡았지만, 플레트네프 자신이 완벽한 테크닉과 독창적 해석으로 명성 높은 피아니스트다. 피아니스트 앞에서 피아노로 존재 가치를 입증해야 하는 셈이다.

백혜선은 그에 대해 “겉으로는 러시아적 정취를 강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빼어난 기교를 바탕으로 곡을 장악해간다. 한 마디로 피아노를 너무나 손쉽게 자신의 생각대로 만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백혜선에게 걱정거리는 이 하나만이 아니다. 협연곡도 만만치 않다. ‘악마의 곡’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 피아니스트 데이빗 헬프갓을 모델로 했던 영화 ‘샤인’에서 주인공이 연주 중에 쓰러졌던, 바로 그 곡이다.

“백조가 호수를 우아하게 노닐고 있지만 물 밑에선 계속 발길질을 해야 하는 것처럼, 서정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끊임 없이 손을 움직여야 한다. 피아니스트들의 손가락을 무척이나 피곤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했다.

1991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4위, 1994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1위 없는 3위에 입상했던 그는 최근 1980년대생 피아니스트들의 약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임동민에게 물었던 같은 질문을 던졌다. 백혜선은 “너무나 자랑스럽다. 자신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만감에 빠지지 말고, 단지 피아니스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로 평생 성장해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마르타 아르헤리치, 크리스티안 침머만, 라두 루푸 같은 명 피아니스트들을 지금은 누구도 ‘어느 콩쿠르 입상자’ 출신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예술적 성장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5월 21일 경기도 문화의 전당(수원), 22일 부산문화회관,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24일 대구 수성아트피아 (02)541-6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