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받지 못한 스크린 속 아버지

스크린에 등장하는 초라한 아버지들은 동시대 한국 사회의 위축된 아버지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007년 현재, 돈을 벌어다주고, 가족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그들을 더 이상 “아버지”라 부르지 않는다. 영화는 존재가 아닌 기능으로 가늠되는 훌륭한 아버지에 대한 사회적 무의식을 사실감 있게 전달한다. 한국 사회는 이제 ‘날아라 허동구’의 아버지처럼 자식에게 헌신하고 ‘우아한 세계’의 조폭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아버지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2007년 5월, ‘아버지’가 스크린을 점령했다.

‘우아한 세계’(한재림), ‘눈부신 날에’(박광수), ‘이대근, 이댁은’(심광진), ‘아들’(장진), ‘날아라 허동구’(박규태) 등 최근 개봉한 가족용 영화의 90%가 아버지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영화 속 아버지들은 모의라도 한 듯 모두 문제투성이들이다. 조직폭력배, 건달, 외톨이…. 돌아온 아버지들의 형편이 이렇다. 아들을 위해 복수를 자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기업 총수의 이야기까지 더하면, 2007년 5월은 정말 아버지로 넘쳐난다.

그런데 아버지를 그려내는 이 영화의 시선들이 지극히 수상하다. 수상함은 돌아온 아버지들이 모두 용서를 구하는 자들이라는 점에서 증폭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아버지들은 하나같이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잃은 인물들이다. 그들은 ‘죽어 없어지라’며 저주하는 딸 앞에서 술주정이나 하고(우아한 세계) 당신은 불행의 씨앗이라 악다구니 쓰는 아들(이대근, 이댁은) 앞에 고개를 떨군다. 아버지가 돌아왔으니 벌떡 일어나 마중해야 한다는 윤리나 관습은 영화 속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낳아 준 게 대수냐는 듯 자식들은 아버지를 부정하고 과오를 파헤친다. 점령했다고 하지만 엄밀히 말해, 오히려 아버지는 대가를 치르기 위해 스크린에 소환된 것처럼 보인다.

주목해야 할 것은 초라해진 아버지들에 대한 영화의 시선이 사뭇 괴이쩍다는 사실이다. 이 수상함은 하나같이 용서와 화해로 수렴되는 결말에서 확인된다. 자신을 버리고 간 아버지에게 딸은 각막을 주고, 발로 차고 떠난 아버지에게 죽은 아들의 친구가 대신 아들이 되어 준다. 과오를 저질렀던 아버지들은 가정으로 복귀한 뒤 거의 예외없이 구원을 얻어 퇴장한다. 위축된 아버지에 대한 구원의 서사가 곧 2007년 5월의 아버지 영화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5월의 가족영화는 가족이 아니라, 아버지를 위한 위로용 영화는 아니었을까. 코너에 내몰려 반성을 요구받는 상황을 넘어, 아버지들은 영화를 통해 면죄부를 얻어 간다. 문제는 이 화해가 급조된 환상에 불과하다는 점에 있다. 올해 개봉한 대부분의 아버지 영화들이 공교롭게도 억지스러운 반전으로 황급히 마무리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영화는 벌어진 상처를 억지로 봉합하느라 전전긍긍한다.

아버지를 반성하는 듯하지만 2007년 5월의 영화는 초라해진 아버지를 위한 굿판에 가깝다. 화해라는 윤리로 무장해 저벅저벅 들어온 아버지, 그러나 진정한 아버지는 용서를 구하는 자가 아닐 것이다. 거짓 화해를 주선하는 아버지 영화들, 그것은 그저 위축된 아버지에 대한 값싼 위로에 지나지 않는다. 새로움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는 한국 영화의 해결책이 단지 소재로서의 아버지는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