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밀양': 절망의 끝에서 뒤돌아보다

한 인간을 극한의 절망으로 몰고 갈 상황은 분명 하나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이를 가진 엄마로서, 한 남자의 아내로서 이르게 될 고통의 한 유형으로 이같은 상황을 설정했다는 감독의 말처럼 신애(전도연 분)는 이룰 수 없는 절망의 끝에 서 있다.
　
송강호 전도연이라는 걸출한 두 배우의 이름만으로도 스쳐 지나칠 수만은 없는 영화 '밀양'(제작 파인하우스 필름)에 거는 기대치는 그 어느 작품보다 높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20년 전 이청준 작가의 '벌레이야기'를 읽은 것이 마음에 남아 '오아시스'를 찍은 직후부터 영화로 만들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창동 감독의 말을 듣고나니 이 영화 '밀양'이 더욱 궁금해질 수 밖에 없다.
　
괜스레 가슴이 뭉클해지는 오프닝곡(Criollo크리오요 / 작곡 크리스띠안 바쏘)이 흐르고 밀양으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신애와의 첫만남이 이루어진다.
　
교통사고로 잃은 남편의 고향에서 어린 아들과 새출발하는 신애. 밀양(密陽)은 그녀에게 절망의 시작이었거나 혹은 절망의 끝이었다.
　
그곳에는 종찬(송강호 분)이 있다. 적당히 세상에 익숙해져 적당히 속물적인 종찬은 늘 신애의 뒤에 서 있다.
　
시작은 순조로운 듯했다. 그러나 살아나기 위해 찾아온 밀양은 살아가기 위해 부렸던 작은 허세들로 인해 희망을 삼켜 버린다.
　
유괴당한 아들의 죽음으로 영화가 끝나는가 싶더니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이다.
　
벼랑 끝에 몰린 신애가 손을 내민 곳에는 종교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고통 깊숙히 칼날을 꽂는 것은 다름 아닌 신앙이었다.
　
겨우 숨통을 트게해준 신앙 앞에 자신을 맡긴다. 맡기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진 것이 없어 너무도 가벼운 신애는 자신의 믿음에 배신 당한다. 그녀가 던져진 곳에서 세상은 그녀를 조롱하는 듯 했다. 살고자 하니 죽으라 한다.
　
과연 송강호가 입이 닳도록 전한 '전도연의 전무후무한 연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깊이 파고들었다. 전도연의 연기가 깊어질 때마다 송강호는 종찬의 어눌함으로, 속물 근성으로, 질척한 사람 내음으로 영화에 온기와 웃음을 더했다.
　
영화 내내 신애를 따라다니는 햇살은 신애를 더욱 시리게 한다. 한 줄기 빛도 '견딤'의 연속인 인간에겐 더 큰 절망이 되는 것임을 감독은 의도한 것일까. 그 빛이 다시 희망으로 퍼지기 전까진 더한 절망만을 안겨줄 뿐이다.
　
그리고 신애는, 종찬은 다시 산다. 사는 건 누구에게나 같은 일이 아니었던가.
　
'밀양'을 보는 눈은 다양할 것이다. 하염없이 신애의 뒤를 쫓는 종찬의 시선이든지, 신애의 고통에 일체된 시선이든지. 그러나 긴 호흡 속에 보게 되는 것은 결국 신애의 뒤를 따라다니는 한 줄기 빛임을 알게 된다. 2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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