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영화의 촬영 현장은 음산하고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꼭 그런 건 아니었다.
영화 '기담'(감독 정가형제, 제작 영화사 도로시)의 촬영 현장을 보기 위해 지난 월요일(8일) 찾아간 경기도 남양주 양수리 종합촬영소는 한 편의 멜로 영화가 딱 어울릴 만한 모습이었다.
때이른 더위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와 형형색색 산을 뒤덮은 봄꽃들은 '공포'라는 단어와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 '기담'이 아닌 '만담'을 주고 받던 현장 관계자들은 "세트 촬영한 지 한 달이 다 돼 가는데 그렇게 말이 많던 세트장 귀신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실내 세트장으로 들어가자 1940년대 병원을 재현해 놓은 광경이 펼쳐지면서 왠지 모를 한기가 엄습해 왔다.
1년여 동안 스케치, 미니어처, 3D 시뮬레이션 등의 작업을 거쳐 만들어졌다는 병원 세트장은 기존의 세트와는 달리 복도와 계단까지 통으로 연결돼 실제 동선을 100% 구현할 수 있게 설계돼 있었다.
이 날은 유약한 의대 실습생 정남(진구)이 시체실에 안치된 아름다운 여고생의 시신을 보고 묘한 감정에 사로잡히는 장면이 공개됐다. 2대8 가르마를 유지하기 위해 앞머리에 핀을 꽂은 진구가 중얼중얼 대사를 외우는 동안 아리따운 시체 역의 여배우가 복도를 연신 들락거렸다. 곧이어 감독의 큐 사인이 떨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눈 앞에서 왔다갔다 하던 여배우는 시체 안치실에 창백한 모습으로 드러누웠고, 진구의 표정 역시 사뭇 진지해졌다. '만담'이 오가던 현장 분위기 역시 일순간 공포 영화 촬영 모드로 변했다. 그렇게 '신 34'의 촬영은 두 시간 남짓 이어졌다.
촬영이 끝나자 진구는 "그동안 본의 아니게 남자다운 역할을 많이 맡았는데 사실은 겁이 무척 많은 성격"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김태우가 슬쩍 딴지를 걸었다. "그렇다면 예전에 연기가 참 좋았단 말이군요." 두 사람이 정답게 옥신각신하는 동안 홍일점 김보경이 촬영 중 눈물을 흘린 사연을 털어놨다.
"3월 늦추위에 청태산 촬영을 할 때였어요. 맨발로 눈길을 헤치며 달리는 장면이었는데, 정말 찢어질 듯한 고통에 혼자서 눈물을 펑펑 흘렸어요. 특히 인공눈이 그렇게 따갑더라구요." '친구'부터 '청풍명월'에 이르기까지 유난히 홍일점 역할을 많이 한 탓에 '외로워도 슬퍼도' 혼자 잘 견뎌냈다는 김보경이었지만, 그 때는 정말 실컷 울었단다.
어지간해선 공포 영화를 보고 공포를 잘 못 느낀다는 네 살 터울의 사촌 형제 감독. 공포 영화는 일부러 찾아 본다는 김보경. 공포 영화는 무서워서 잘 못 본다는 진구. 이들 독특한 조합이 빚어내는 공포는 과연 어떤 것일까.
출연 배우 중 최고참인 김태우가 한마디로 마무리 지었다. "어떤 식으로든 고급스런 영화가 나올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요. 지금껏 나왔던 공포 영화와는 다를 겁니다."
1940년대 경성의 한 신식 병원을 배경으로 사랑과 공포를 엮어내는 영화 '기담'은 현재 55% 정도 촬영이 진행됐으며, 다음 달 크랭크업해 오는 8월 개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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