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곡에 감정 불어넣어 완성도 빼어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자주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 비발디의 ‘사계’는 뒤늦게 재조명받은 걸작이지만 지금은 거꾸로 ‘클리셰(Clich?·진부함)’의 위험에 빠져 있다. 누구나 알고 있기에 정작 새로운 것을 내보이기 쉽지 않은 것이다.

1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장영주)과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로 잘 알려진 미국의 오르페우스 체임버가 후반부 프로그램으로 고른 곡이 바로 ‘사계’였다.

사라 장은 새로움에 대한 강박 관념에 빠지기보다는 정공법으로 차분하게 곡에 접근해 갔다. ‘봄’ 3악장에서는 충분히 비브라토(vibrato)를 넣어가며 감정을 불어넣었고, ‘여름’의 첫 악장에서도 숨을 죽이며 강세와 박자를 낮추고 늦췄다가 순간 다시 폭발시켰다.

마지막 ‘겨울’에서 사라 장은 비르투오조(기량이 빼어난 연주자)로서의 매력을 한껏 과시했다. 작곡 당시의 옛 악기와 편성으로 바로크음악에 새 숨결을 불어넣은 ‘당대 연주’의 흐름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힌 셈이다. 새로움은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완성도는 빼어났다.

오르페우스 체임버는 레퍼토리 선정부터 악단 경영까지 단원들이 민주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이름 높다. 이들의 운영 원칙은 12일 무대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첫 곡에서 악장 역을 맡았던 바이올리니스트는 다음 곡에서는 제1바이올린의 가장 뒷자리로 물러나 앉았다. 별도의 리더나 악장 없이 서로 동등하게 위치와 역할을 맞바꾸는 모습에서 미국 특유의 개방적 자세가 배어 나왔다.

탱고의 영향을 짙게 받은 ‘라스트 라운드’에서는 현악 각 파트가 동심원을 그리며 중심으로 다가가는 접근법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스승 드보르작의 딸과 사랑에 빠진 수크가 자신의 심경을 담아낸 ‘현을 위한 세레나데’에서는 감상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늘 한 점 없이 화사함을 유지했다.

▶13일 경기도문화의전당(수원), 15일 세종문화회관, 16일 예술의전당. 1577-5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