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 호황, 이제부터가 시작

한국미술시장이 폭발하고 있다. 13일 막을 내린 한국국제아트페어 ‘키아프’는 닷새 동안 175억 원어치를 팔아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02년 1회 때 판매총액이 불과 7억 원이었다가 작년에 100억 원으로 이미 올랐는데 올해에는 더 껑충 뛴 것이다. 경매회사의 경우도 작년 1년 동안 낙찰총액이 서울옥션 296억 원, K옥션 273억 원이었는데 올해 1분기 집계만으로 각 회사가 이미 100억 원을 넘어 섰다. 곧 있을 두 경매회사의 메이저 경매는 박수근, 김환기, 천경자 등 블루칩 화가들의 10억~30억 원대 작품으로 또다시 고가 경쟁을 한다. 두 회사는 연말까지 낙찰총액을 각각 400억~600억 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K옥션은 응찰자가 넘쳐 15일 경매장소로 하얏트호텔 리젠시룸을 빌렸지만 그마저 300석이 이미 마감됐다. K옥션측은 “2년 전 회사를 지을 때 이런 수요를 예측하지 못했다. 조만간 넓은 건물로 이사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최근 미술시장의 호황은 20년 만에 보는 기이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번 키아프에서는 일반 오프닝을 앞두고 하루 전날 저녁에 열린 VIP 오프닝 때 이미 주요 갤러리의 인기 작가들 작품이 팔려 나갔다. 가나아트갤러리의 배병우 고영훈 이동재의 작품에는 VIP 오프닝을 시작하고 한 시간이 채 못 돼 ‘팔렸다’는 빨간 스티커가 붙었고, 국제 갤러리도 전광영 이기봉 정연두의 작품이 빨리 팔려 닷새 동안 세 번에 걸쳐 작품을 바꿔 걸었다. 학고재 화랑의 이영배 송현숙 강익중 강요배의 작품도 100% 다 팔렸고, 갤러리 현대의 이왈종 김병종 오치균은 ‘다음 번 작품이 완성되면 먼저 연락을 달라’는 사람들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서진수 한국미술시장연구소장은 “저금리, 부동산 투자억제, 문화산업 붐, IMF 이후 유동자금 증가, 부자들의 세대교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미술시장이 폭발했다”며 “예전에는 돈을 아끼는 게 미덕이었다면 지금 부자들은 멋있게 쓰고 싶어한다. 또 주택가격이 치솟고 호화로운 주택이 많이 생기면서 이런 집에 걸맞은 미술품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 아트펀드를 조성하는 등 미술품을 실물자산으로 인정한 것, 이웃 중국의 미술시장이 세계적인 관심을 끌어당긴 것도 불을 붙인 원인이다.

미술시장이 살아난 덕에 미술 애호가층도 넓어졌다. 이번 키아프에서는 엄마와 아이들, 젊은 커플들이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노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외국인들의 한국미술에 대한 관심도 급증했다. 일본 최대 경매회사인 신와옥션, 세계 최고의 아트페어인 아트바젤, 독일의 일간지인 디 벨트(Die Welt)지의 담당자들이 키아프를 보러 왔다. 뉴욕에서 대형 호텔과 기업의 미술품 구매 컨설팅을 하는 컨설턴트 엘리자베스 위너 씨는 “새롭게 뜨는 한국미술 시장을 조사하기 위해 처음으로 한국의 아트페어에 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