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작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의 감독 왕가위
“미국의 이야기를 영어로 찍어보고 싶었습니다. 홍콩에서 가장 먼 곳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지만, 본질적으로는 문화나 언어의 차이가 내 영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시험해 보고 싶었어요. 개막작으로 불러주셔서 영광입니다.”
짙은 선글라스 차림의 짧은 머리 사내가 씩 웃으며 흰 이를 드러낸다. 왕가위(王家衛·49). 지난해에는 심사위원장으로 이 영화축제를 지배했던 ‘칸의 황태자’는 올해에는 개막작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My Blueberry Nights)를 들고 돌아왔다. 16일 오후 제60회 칸 국제영화제 개막작 기자회견. 칸이 가장 사랑하는 감독 중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이 홍콩 감독은 40분의 회견 시간이 부족한 듯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냈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홍콩감독 왕가위 최초의 영어 프로젝트. 할리우드 톱스타 주드 로와 나탈리 포트만이 출연하고 재즈 싱어 노라 존스의 스크린 데뷔작이기도 하다. 그는 “모국어가 아닌 이상, 영어로 영화를 찍는다는 건 정말로 심한 스트레스였고 도전이었다”면서 “촬영 내내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이 느낌이 확실한지를 되물어야 했다”고 털어놨다. 회견장에 함께 나온 옆 자리의 주드 로와 노라 존스가 순간 환한 미소로 감독을 응원했다.
왕가위의 첫 영어프로젝트도 화제였지만, 이날 그에 못지않은 화제는 그래미상 수상자인 노라 존스의 스크린 데뷔였다. 이 아름다운 ‘노래하는 배우’가 “촬영 첫날에는 너무 긴장해서 쇳소리가 다 나왔다”고 기자들에게 고백했고, 이에 감독은 “너도 처음이지만 나도 처음(첫 영어프로젝트)이라는 말로 존스를 위로했다”고 그 당시를 추억했다.
마지막까지 편집과 수정을 반복하는 탓에 초청 당사자인 영화제측을 늘 애태워왔던 왕가위의 ‘악습’은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했다. 지난해 심사위원장을 마치고 칸을 떠나자마자 시작한 프로젝트였지만, “이틀 전까지 LA에서 편집을 하고 있었고, 어제 마지막으로 프린트를 떴다”는 것. 회견장 문 앞에서 기자들 틈에 숨어 회견을 지켜보던 칸 영화제 티에리 프리모 예술감독이 짐짓 이 ‘지각대장’을 째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