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ABC] ‘마지막’이 ‘마지막’을 연주한다

‘악성(樂聖)’ 베토벤(1770~1827)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 심혈을 기울였던 장르가 바로 실내악입니다. 교향곡(9곡), 피아노 소나타(32곡) 등 모든 장르에 걸쳐 불후의 걸작들을 쏟아냈지만, 현악 4중주(16곡)는 그가 끝까지 사투를 벌였던 음악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질병과 조카의 자살 미수에 시달리면서도 창작욕을 불태웠던 현악 4중주에 대해, 후세의 베토벤 연구가 메이너드 솔로몬은 “예술이 위험에 빠지고 예술의 미적·윤리적 기능이 의문시되는 바로 그 순간에 예술가는 예술의 신성함을 방어하기 위해 일어선다”고 적습니다.

특히 현악 4중주 13번(작품 130)은 베토벤이 숨지기 직전까지 퇴고(推敲)를 거듭했던 만년의 걸작입니다. 당초 긴 푸가(fuga)를 마지막 악장으로 완성했지만 악보 출판사와 연주자 모두 맘에 들어 하지 않았지요. 결국 베토벤은 이 푸가를 떼어내서 ‘대(大) 푸가’라는 별도의 작품으로 만들고, 6악장 ‘알레그로’를 새로 씁니다.

새로운 버전의 현악 4중주는 결국 베토벤이 숨진 뒤에야 출판됐다고 전합니다. 최근에는 ‘대 푸가’를 다시 현악 4중주의 마지막 악장으로 연주하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오는 31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에서 마지막 내한 무대를 갖는 알반 베르크 현악 4중주단도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3번 말미에 ‘대 푸가’를 붙여서 연주합니다. 베토벤의 당초 의도에 충실하려는, 일종의 ‘복원판’인 셈입니다. 1970년 결성 이후 당대 최고의 실내악단으로 평가 받았던 이들은 내년을 끝으로 활동을 접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수많은 실내악단이 명멸(明滅)을 거듭하는 중에도 이들은 바위 같은 묵직함과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앙상블로 30여 년간 정상을 지켜왔지요. 이번 공연에서도 지난 2005년 타계한 전(前) 비올리스트 토마스 카쿠스카를 추모하는 작품인 볼프강 림의 ‘그레이브(Grave)’를 함께 연주합니다. 동료의 죽음과 자신의 말년을 함께 조명하는 음악회인 셈입니다. 베토벤과 알반 베르크 4중주단의 모습이 조금씩 겹치면서, 이들의 음악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도 천천히 아려올 것 같습니다. ▶공연 문의 (02)580-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