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청테이의 한 허름한 건물. 입구부터 심상치않다.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콘크리트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여기저기 물건들이 쌓여있는 사무실이 나타난다. 고물상의 창고같은 이 곳이 할리우드가 인정한 류웨이장(유위강), 마이자우후위(맥조휘) 감독에겐 '시네마 파라디소'다. 이들이 함께 만든 '무간도'는 거장 마틴 스콜세지에 의해 리메이크돼 올해 초 아카데미 감독상 등 주요상을 휩쓸었다. 특히 류웨이장 감독은 최근 촬영을 끝낸 리차드 기어 주연의 '플록'으로 할리우드에 본격 데뷔했다. 이번에 한국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상성:상처받은 도시'는 살인사건을 은폐하려는 량차오웨이(양조위)와 사건을 파헤치려는 진청우(금성무)의 두뇌게임을 그린 영화. 감각적인 영상과 세련된 연출, 흡입력 넘치는 줄거리로 관객을 즐겁게 해줄 기대작이다. 특히 두 배우의 팽팽한 연기 대결이 압권이라는 평이다. '상성'의 31일 한국 개봉을 앞두고 두 감독이 14일 자신들의 사무실에서 한국 기자단과 만났다.
-사무실이 굉장히 허름하다.
▶이 정도면 호화스러운 것 아닌가.(웃음). 1998년부터 우리 두 사람이 이 곳에서 꿈을 키워왔다. 입구에 들어서면 영화관에 온 듯 마음이 편해진다. 함께 작업한 영화 소품들을 모아놓았기 때문이다. 눈을 돌릴 때마다 추억의 한 장면이 영화처럼 떠오른다. (기자단이 앉아있는 의자를 가리키며) 이건 '상성'에 나왔던 의자고, '데이지'에서 전지현이 그렸던 그림도 있다.(류웨이장, 이하 류)
-영화 제목이 인상적이다.
▶상처받은 도시 홍콩에서 벌어지는 슬픈 사연을 담고 싶었다. 어느 도시든 비극적인 이야기가 있게 마련이다. 특히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본토 인구가 유입되면서, 떠난 사람과 남겨진 사람들의 슬픈 사연이 늘어났다.(마이자우후위, 이하 마이)
-현란한 영상이 인상적이다.
▶한여름에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드느라 고생했다. 섭외도 쉽지 않았다. 소호 지역에서 전체 골목을 막아놓고 촬영했고, 야간 항공 촬영을 홍콩 영화사상 처음으로 성사시켰다. 특히 센트럴 쪽엔 주요 기관이 많아 영화인들이 항공 촬영을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관철시켰다. (류)
-두 사람의 역할 분담은?
▶함께 작업을 하면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마이)
▶서로 손발이 잘 맞는다. 또 쉬운 건 내가, 하기 싫은 건 마이 감독에게 미루면 된다.(류)
-'무간도'와 마찬가지로 '상성'에서도 이중적인 캐릭터를 그렸다.
▶양면적이며 비극적인 캐릭터를 영화에서 보여주는 걸 좋아한다. 기획단계에서 다른 역을 맡기로 했던 량차오웨이는 촬영 두 달전에 배역이 바뀌었는데, 놀라운 집중력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마이)
-량차오웨이와 많은 작업을 함께 했다.
▶20년 넘게 그를 봐왔는데, 이번처럼 악랄한 역을 소화해낸 적이 없었다. 유정희 역을 량차오웨이가 하기로 결정한 순간, 우리 둘 다 무척 흥분했다. 우수어린 로맨티스트 이미지가 강한 이 남자의 변신은 관객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안겨줄 것이다.(류)
-류 감독은 '데이지' '묵공' 등 합작영화 작업을 많이 해왔다.
▶한국 일본 태국 홍콩 등지의 영화인이 함께 손을 잡아야 아시아 영화인들의 힘을 키울 수 있다. 그러나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다. 전지현 정우성 이성재 주연의 '데이지'의 경우 특히 많은 문제가 있었으며, 나에겐 좋은 경험이었다. 미국은 시스템이나 투자자금이 아시아보다 세다. 내 스스로 가진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류)
-'상성' 속편을 만들 계획은.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무척 고생을 했다. '무간도'와 달리 속편을 만들 생각은 현재로선 없다. '디파티드' 팀이 '상성'을 리메이크한다니, 만약 한다면 그쪽에서 하지 않을까.(마이) < 홍콩=전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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