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더 능한 두 영화 칸을 떠들썩하게 하다

이번 주말 영화도시 칸을 들썩거리게 만든 두 편의 영화가 있다. 하나는 첫 공개된 마이클 무어(Moore) 감독의 신작 다큐멘터리 ‘시코’(Sicko:환자라는 뜻의 속어), 그리고 또 하나는 60년 역사상 칸 영화제에서 처음 선보인다는 북한영화 ‘한 녀학생의 일기’(칸 공개제목: A Schoolgirl’s Diary)다. 물론 같은 ‘체급’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시코’는 전 세계 기자들에게, ‘한 녀학생의 일기’는 한국 기자 위주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두 편 모두 영화보다는 정치에 더 능수능란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19일(현지시각) 무어의 기자회견장은 한마디로 북새통이었다. 회견장은 복도까지 빈틈이 없었고, 외부에 설치된 대형 TV 앞까지 세 겹 네 겹으로 둘러쌌다. ‘시코’는 미국의 의료시스템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프랑스나 영국에 비해 개인에게 훨씬 더 많은 부담을 지우는 미국의 의료보험 시스템을 무어 특유의 비아냥으로 조롱한다. 부시 대통령에 대한 조롱도 여전히 반복됐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고 보니 사전에 논란이 됐던 ‘쿠바 치료’ 부분은 5분 정도에 불과했다.

영화에서는 2001년 9·11 당시의 구조대원 중 자원봉사자들은 의료혜택을 받지 못했고, 무어 감독이 이들을 미국의 적성국인 쿠바의 무료 병원으로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 정부에 대한 비난과 동시에 무어 감독이 실정법을 위반했다는 논란도 벌어졌지만, 어쨌든 영화 홍보에는 대단한 도움이 됐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다룬 ‘화씨 9/11’로 2004년 칸의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무어는 그때의 교훈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는 듯했다. 언론을 통한 이슈의 확대 재생산이 가져오는 효과를 잘 알고 있는 이 감독은 “이제는 실천에 옮겨야 할 때(a call to action)”라며 ‘선동’했다. ‘쿠바 치료’와 관련, 연방정부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필요 이상으로 강조했다. 무어 감독은 “이전 스타일과 달라졌다”고 여러 번 주장했지만, 이날 처음 선보인 ‘시코’는 그의 이전 작품인 ‘볼링 포 콜럼바인’이나 ‘화씨 9/11’의 주제만 다른 동어반복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다. 영화의 내용보다 포장에 성공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영화전문지 버라이어티는 “Sicko is Socko”(‘시코’는 흥행에 성공했다)라고 비꼬았다. 무어의 상업주의를 충분히 학습한 때문일까. 칸은 올해 무어의 이 화제작을 경쟁부문이 아닌 비경쟁부문으로 초청했다.

전날인 18일에는 북한영화 ‘한 녀학생의 일기’의 마켓 시사회가 열렸다. 칸 공식부문에 오른 작품은 아니고, 각국의 영화를 서로 사고파는 필름마켓에서 한 프랑스 배급업자가 주최한 자리다. 이 배급사는 파리에 사무실을 둔 소규모 영화사인 프리티 픽쳐스. 지난해 10월 이 영화의 해외 판권을 구매했다고 했다. “칸은 물론, 서양에서 공개되는 사상 첫 북한영화”라는 거창한 홍보문구가 ‘북한에서는 무려 800만 명이 관람했다’는 주장과 함께 호객(呼客)을 선도했다. 바쁜 부모 탓에 반항적으로 변했던 여고생이 엄마가 병에 걸리며 착한 딸이 된다는 내용의 이 드라마는, 좋게 말해 소박한 70년대 드라마 수준이었다. 하지만 프리티 픽쳐스의 제임스 벨레즈(Velaise) 사장은 영화의 내용에 대해서는 별 언급 없이 “시네필(영화광)인 김정일 위원장이 시나리오와 편집에 이르기까지 직접 관여한 작품”이라는 부분만 집중적으로 강조했다. 이 역시 영화의 내용보다는 ‘북한 상업주의’로 승부하려는 전략이었던 셈이다. 어떤 영화도 각자의 정치적인 시선을 가질 수 있지만, 영화제마저 예술적 성취보다 ‘정치적 상업주의’로 관객을 모으는 현장, 칸 영화제의 또 다른 얼굴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