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만원 짜리 첫 영화로 칸 ‘노크’

이 사내가 지닌 칸 영화제 입성과정은 그 유례를 찾기 힘들 것 같다. 이 이삭 정(Lee Isaac Chung·29). 60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 받은 재미교포 2세 감독이다.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찍은 작품 제목은 르완다어로 ‘해방의 날’을 뜻하는‘문유랑가보’(Liberation Day). 학비 아낀 돈을 모은 4만 달러(약 3700만원)의 제작비로 난생 처음 찍은 장편영화다.

지난 4월 칸의 공식 초청전화를 받았을 때, 이삭은 뉴욕의 한 병원에 누워 있었다. 그는 팔뚝에 주삿바늘이 꽂혀 있다는 걸 잊고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난생 처음 만든 장편영화가 칸 영화제의 대표적 섹션 중 하나인 ‘주목할 만한 시선’에 뽑히는 순간이었다. 이 부문에는 그가 가장 존경한다는 대만의 거장 허우샤오시엔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직 소년의 얼굴을 한 이 감독은 “신청 마감날 무작정 한 번 내본 것(blind submission)이라 더 믿을 수가 없었다”며 더듬거리는 한국어로 말했다. 영화 자체도 물론 중요하지만, 제작사나 배급사의 정치력이 적잖은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소문난 이 영화제에서 개인이 ‘자발적 투고’한 작품이 선택되다니. 칸 측에서는 “영화를 본 선정 위원 모두 만장일치였다”는 말도 들려줬다.

3년 전 그는 예일대 의대 예과(생물학) 학생이었다. 태어난 곳은 콜로라도. 30년 전 한국을 떠나 이곳으로 이민 간 부모님은 자신의 아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를 바랐다. 하지만 예과 졸업반 때 교양과목으로 들었던 미국 독립영화감독이 진행했던 연출론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그는 “영화로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후 그는 유타대에서 3년짜리 영화전공과정을 2년 만에 마쳤고, 두 편의 단편을 만들며 제작 기법을 배웠다.

뉴욕에 살고 있는 그가 첫 장편을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찍은 표면적 이유는 아내가 르완다에서 자원봉사활동을 계속해왔기 때문.

작년 여름 부인을 따라 르완다를 처음 찾은 그는 현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사진·영화 강의를 열었고, 무려 2만 명이 집단매장된 르완다 학살(1994년) 때 부모를 잃고 고아로 살아온 청소년들을 강의실에서 만났다. 그런데도 맑은 영혼을 지니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는 반했다. 그러고는 그 아이들이 주연하는 ‘르완다 영화’를 만들겠다고 결정했다. 르완다의 시선으로 바라본 지금의 르완다를 그리고 싶었다.

영화는 르완다 학살 15년이 지난 시점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찾아나서는 소년의 여정을 다룬다. 촬영기간은 겨우 열 하루. 제작비는 4만 달러. 어쩌면 올해 공식부문 장편 중에서 가장 적은 제작비라고 단언해도 과장이 아닐 액수다. 시나리오, 촬영, 편집도 그의 몫이었다. 칸에서 그가 수상을 할지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이름과 진심 어린 영화는 오랫동안 인용되고 기억될 것이다. ‘문유랑가보’는 24일 칸에서 공식 상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