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나락에 떨어지는 시간을 연기했다. 그리고 봄,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맞이했다.
지난 3월 웨딩마치를 울린 전도연. '인생의 반쪽'을 만났으니 온 세상이 핑크빛으로 보일 터. 여기에 금상첨화, '밀양'으로 칸 공식 경쟁부문에 초대됐다.
그녀가 송강호와 호흡을 맞춘 '밀양'에 쏠리는 국내외 시선이 뜨겁다. 미국의 LA위클리가 극찬한데 이어, 유명 영화지인 버라이어티도 최근 '칸의 미래를 이끌 영화인 60명' 리스트에 전도연을 올렸다. 23일 프랑스 칸에 도착하자마자 유력 해외 언론들의 인터뷰 요청에 시달려야 했다. 벌써부터 수상을 점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첫 경험으로 가득찬 '밀양'
해외 유명 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는 것은 90년 데뷔 이후 처음이다. 비행기를 타기 직전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유명 배우들을 만날 생각에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설렛다.
그런데 '밀양'은 여러모로 우여곡절이 많았던 작품이다.
"처음 이창동 감독님에게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는 무척 기뻤어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읽고는 바로 거절했죠."
극단을 오가는 '신애'의 캐릭터가 낯설었다.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문학적으로 풀어낸 시나리오 앞에서 선뜻 자신감이 생기지 않았다. 결국 이창동 감독의 거듭된 러브콜에 마음이 움직였다. 오기도 생겼다. 송강호란 배우도 욕심이 났다. 그 뒤론 산 넘어 산. 충무로에 발을 내딛은 이후 처음으로 '촬영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창동 감독의 '불친절한' 연기 주문은 그녀를 극한 상황으로 몰아가기까지 했다. '차라리 안들으니 못한' 디렉션때문에 마음 고생도 했다.
"너무 힘이 들 때는 감독님에게 의지하고 싶어지잖아요. 그런데 끝까지 답을 안주시더라고요."
오기로 시작해, 이 막물고 버텼다. 촬영장에 놀러온 듯 상황을 즐기는 송강호가 존경스러웠다. 시사회 직후 그녀에게 쏟아지는 극찬엔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 "아직도 목이 말라요"
강산이 변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특히 연기 수명이 짧을 수 밖에 없는 여배우가 이렇게 '장기 집권'할 수 있는 비결은 도대체 무엇일까.
"제 자신을 돌아볼 때 부끄러운 점이 많아요."
세상에, 칸이 인정한 배운데 이게 웬 말인가.
"저 자신을 쉴새없이 들볶는 성격이에요."
그녀 표현 그대로 전도연은 좀처럼 만족하는 법이 없다. 자기 자신에게 매기는 점수는 항상 박하다.
촬영 중단을 요구했던 전화 장면. 유괴범에게 협박 전화를 받는 신이었는데, 왜 그리 힘들어 했을까. 드라마틱한 설정이니 그녀 정도의 내공이면 눈 감고도 찍었을 만한데 말이다.
"눈물이 안나오더라구요. 순간 당황했죠. 신애가 어떤 심정일지 마음에 확 와 닿지를 않더라고요. "
이를 악물어 입술에 피가 날 정도였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스태프들은 모두 "완벽하다" 했지만, 왠지 가식적인 표정이 나오는 듯 했다. 카메라에 담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 장면, 한 장면을 그렇게 찍었다. 촬영 막판엔 온 몸이 아프기까지 했다.
"모든 작품이 어렵지만 '밀양'은 정말 순간순간이 고통스럽고 힘들었어요."
'밀양'의 영어제목은 'Secret Sunshine'이다.
햇살로 반짝이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전도연. 한국 관객들과는 지난 수요일(23일) 만났다. 칸의 수상 결과는 28일 결정된다. 그러나 결과와 상관없이 '밀양'은 그녀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자리를 잡을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