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세 어머니는 화가, 62세 아들은 매니저

    입력 : 2007.05.25 00:27 | 수정 : 2007.05.25 04:58

    미술계 소문난 ‘단짝 母子’ 이성자·신용극씨

    佛화단 ‘동녘의 女대사’로 불려… 내달 10일까지 국내서 개인전

    ▲미술계의‘단짝 모자(母子)’인 이성자씨(오른쪽)와 아들 신용극씨가 이씨의 작품 앞에 함께 섰다. 이태경 객원기자 ecaro@chosun.com
    이 화가 어머니와 기업인 아들은 늘 그림자처럼 붙어 다녀 ‘단짝 모자(母子)’로 미술계에 소문났다. 갤러리 현대에서 개인전 ‘우주의 노래’(6월 10일까지·02-734-6111) 전시회를 하고 있는 재불화가 이성자(89)씨는 9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바쁜 현역 화가다. 매니저처럼 늘 그의 옆에 있는 사람은 셋째 아들 신용극(62)씨. 명품 브랜드 몽블랑의 국내 유통사인 유로통상 회장이다.

    이성자씨는 보청기를 끼고 거동이 좀 불편한 것만 빼면 여느 중년작가 못지않게 열정이 넘친다. 그는 젊은날 진주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와 도쿄 지센여자대학을 졸업한 신여성이었다. 하지만 의사인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순조롭지 않았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 결혼은 파경을 맞았고, 그는 세 아들을 둔 채 혼자 파리로 떠났다. 이후 50년 넘게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유화, 도자기, 판화 등에 동양적 향취를 담아 유럽 화단에 알려졌다.

    “어머니는 참 지독한 분이시죠.” 신 회장이 잘라 말했다. “10년 넘게 애만 키우던 평범한 주부가 덜컥 파리로 가 처음 미술학교라는 곳을 가보고, 2~3년 만에 화가로 발전했으니 이건 연구대상 아닙니까.”

    곁에서 아들 이야기를 듣던 이씨가 말했다. “다 내 팔자고 운명이었어.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나는 내 인생과 내 작업에 만족한다.”

    이씨는 파리로 간 지 14년 만이었던 1965년에 처음으로 한국땅을 다시 밟아 첫 귀국 개인전을 열었다. 아들인 신 회장이 스무 살 되던 해였다. 아이들 얼굴을 다시 본 것도 처음이었다. 이씨는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이들 생각을 해서인지, 떨어져 있었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늘 마음속에 있으니 더 가까이 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지금 큰아들 용석씨는 인천아시안게임유치위원장, 둘째 용학씨는 프랑스 파리7대학 건축학과 교수다. 이씨가 39세에 만난 프랑스의 시인·소설가 미셸 뷔토르는 이씨를 가리켜 ‘동녘의 여대사’(ambassadrice de l’aube)라 불렀다. 그와 함께 시화집을 발간하기도 했고, 1977년엔 이씨의 작품에 뷔토르의 시를 실은 작품을 갤러리 현대에서 전시하는 등 한국에서 전시도 활발하게 해왔다.

    이번 전시는 90년대 이후부터 최근까지 그린 작품 50여 점을 모았다. 우주를 형상화한 화려한 바탕 위에 프랑스 투레트에 있는 이씨의 화실 건물과 똑같은 모양인 원 모양의 기호가 둥둥 떠다닌다. 신씨는 “우주 공간에 어머니만의 ‘오두막’을 지으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