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 홍콩에서 뜨다

    입력 : 2007.05.29 00:31 | 수정 : 2007.05.29 06:08

    현지 낙찰가가 국내시장 가격기준 되기도
    “경매 때마다 결과 좋아 출품작품 수 늘릴 계획”

    ▲27일 오후 홍콩 크리스티의‘아시아 현대미술’경매에 앞서 열린 프리뷰 전시장에 나온 백남준의‘아기 부처’. 이 작품은 3억2700만원(276만 홍콩달러)에 낙찰됐다. 홍콩=이규현 기자
    홍콩이 한국 현대미술 유통의 중요한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홍콩 경매를 통해 한국의 신인작가가 발굴되고, 현지 낙찰가가 국내 시장의 가격 산정에 기준이 되기도 한다. 심지어 국내에서 작품을 구하지 못한 한국 컬렉터가 홍콩 경매장으로 날아가기도 한다.

    지난 27일 오후 홍콩 완차이에 있는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크리스티의 ‘아시아 현대미술’ 경매는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이날 경매에 나온 작품 264점 중 15%인 40점이 한국작품이었다. 홍경택(39)의 ‘연필 I’(259×581㎝)이 7억6800만원(648만 홍콩 달러·수수료 포함)에 팔려 비싼 작품 ‘Top 10’에 10위로 올랐다. 중국 작가를 제외하곤 유일한 ‘Top 10’이었다. 경매장 안팎에는 한국의 화랑·경매회사 관계자들이 부산하게 드나들고 있었다. 국민은행 PB 팀은 고객 10여명을 동반하고 왔다. 배혜경 크리스티 한국지사장은 “한국작가의 작품을 한국에서 구하기 힘들어 여기까지 온 컬렉터들도 있다”고 말했다.

    홍콩이 한국미술작품의 주요 거래 장터가 된 이유는 우선 홍콩 미술시장의 폭발적 성장을 꼽을 수 있다. 이날 ‘아시아 현대미술 경매’는 7시간 동안 출품작 264점 중 251점을 팔아 낙찰률이 95%나 됐다. 같은 날 열린 ‘20세기 중국미술 경매’까지 합해 이날 오후에 팔린 작품의 총액이 약 720억원(6억900만 홍콩달러)이었다. 홍콩 크리스티의 연간 낙찰총액은 지난 1986년 미화 약 179만 달러에서 2005년 약 2억 6700만 달러로 20년 만에 150배가 늘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미술 상인과 컬렉터와의 만남도 쉬워졌다. 이날 경매에 참석한 일본 최대 경매회사 신와옥션의 요이치로 구라타(42) 사장은 “홍콩은 세금도 낮아, 미술사업을 하기에 아주 좋다”고 말했다. 미국인 마틴 슐리(Martin Schooley·55)씨는 “다른 비즈니스 때문에 왔다가 아시아 현대미술 경매가 있다고 해서 들렀다”고 말했다. 크리스티측은 한국작품 구매자는 아시아인이 70%, 나머지는 미국과 유럽인이라고 밝혔다.

    한국현대미술은 2004년 가을 홍콩 크리스티 경매를 시작으로 국제경매에 본격 진출했다. 이학준 서울옥션 전무는 “국내에서 젊은 작가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을 때 홍콩 경매에서 이들이 비싸게 팔리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며 “홍콩 경매회사가 세계시장에서 아시아미술만큼은 주도권을 쥐고 가겠다는 의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정준모 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은 “이제는 홍콩의 경매 낙찰가격이 국내 작품가격 산정에 영향을 끼칠 정도”라고 했다.

    홍콩 크리스티의 에릭 장 부사장은 “한국미술품은 경매 때마다 결과가 좋아서 점점 출품작품의 수를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미술계는 최근 해외에서 이뤄진 경매가 우리 현대미술을 외국에 홍보하는 역할을 해온 것을 인정하고 이를 기회로 삼자는 분위기다.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외국 미술관에 한국 작가를 알리기는 매우 어려운데 이제는 시장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 더 쉽고 빠르다. 국제 시장으로 데뷔한 작가들이 권위 있는 전시회에 많이 참여하는 등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