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배, 더 이상의 손님잔치는 없다”

해마다 이맘때, 초여름 신록이 짙푸른 생명력을 발산하기 시작하면 세계 각지에서 철새들이 한국을 향해 날아든다. 그냥 철새가 아니라 ‘바둑 철새’들이다. 도래(渡來) 지점은 LG배, 정확하게는 LG배 세계기왕전이다. 올해도 32마리에 달하는 각국의 ‘대표 철새’들은 서울 수송동 서머셋 팰리스 호텔에 사뿐히 내려앉아 둥지를 틀게 된다.

조선일보가 96년부터 주최하기 시작한 이 대회도 올해로 벌써 12회째로 접어든다. 우승 상금이 2억 5000만원으로 국제 연례 바둑행사론 최고액. 당연히 프로들이 가장 선망하는 제전으로 자리 잡았다. 출전자 32명 중 절반인 16명을 뽑은 올해 통합예선전에는 사상 최다인 288명이 출전했을 만큼 이 대회를 향한 기사들의 야심은 크다.

올해 대회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역시 한국의 부활 여부로 모아진다. 2004년 9회 대회 이후 지난 3월 막을 내린 11회 대회까지 3년간 결승전은 모두 외국 기사들 간에 치러졌다. 한국으로선 장소와 상금만 제공하고 잔치는 온통 ‘손님’들끼리만 즐긴 격.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를 주름잡았던 한국 바둑으로선 체면이 안 서는 일이었다.

하지만 올해 한국 팀은 과거 어느 해보다 알찬 최정예 멤버로 구성됐다. 이 대회 최다 우승(4회)에 빛나는 이창호를 필두로 이세돌 최철한 박영훈 등 소위 ‘4천왕’이 망라됐다. 국수 타이틀을 따낸 윤준상, 올 시즌 돌풍의 핵인 목진석, 신예군의 선봉인 강동윤 이영구 등도 출격한다. 54세의 최고참 조훈현과 초단 돌풍의 주역 한상훈(19)도 투구 끈을 고쳐 맸다.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는 15명이란 양적(量的) 풍요도 든든하다.

중국은 세계 2관왕에 올라선 구리(古力)와 창하오(常昊)를 쌍두마차 삼아 10명이 나설 예정. 전년도 준우승자인 후야오위(胡耀宇), 자국 랭킹 2위 쿵제(孔杰), 신예군을 대표하는 셰허(謝赫) 등이 요주의인물로 꼽힌다. 5명이 나올 일본에선 2006년 9회 대회 우승자인 장쉬와 현 자국 1위 야마시타(山下敬吾) 등이 간판. 대만은 저우쥔쉰(周俊勳)이 지난 기 우승하는 바람에 사상 처음 2명이 본선 무대를 밟아 사기 충천해 있다.

LG배는 예상치 못한 ‘다크 호스’가 파란을 낳는 전통이 있다. 지난해에만 해도 변방 약소국(?)으로 분류됐던 대만의 저우쥔쉰이 정상에 서는 대이변이 연출됐다. 10기 때는 만 16세 소년 천야오예(陳耀燁)가 결승까지 진격했고, 9회 때는 당시 최약체로 취급되던 일본에서 우승자(장쉬)를 배출했다. 2004년 7회 때 이창호가 초반 2연패를 딛고 3연승으로 패권을 차지한 드라마는 아직도 팬들의 뇌리에 선하다.

선수들 간의 훈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 선의의 피해자를 막으려는 LG배의 시도는 올해도 계속된다. 선수들은 감독관 입회 아래 점심식사를 한 후 제한된 공간을 벗어날 수 없다.

4일과 6일 각각 1, 2회전이 치러져 일단 16강을 추려낼 예정. 3일 같은 장소에선 대회 전야제를 겸해 대진 추첨이 실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