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 무쇠를 만났을 때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야외 공원에 녹슨 무쇠조각들이 새로 들어섰다. 철을 엿가락처럼 주무르는 프랑스의 조각가 베르나르 브네(Bernard Venet·66·사진)의 대형조각 7점이다. 작가의 지난 40여 년간 주요 작품 65점을 모은 회고전(7월 22일까지·02-2188-6000)이다. 실내에서도 7t짜리 조각을 포함해 타르화(검고 끈끈한 타르를 물감처럼 사용한 그림), 석탄더미 설치작품 등을 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김지영 큐레이터는 “미술관이 생긴 이래 가장 무거운 전시”라고 말했다.

이 작품들은 프랑스 마르세이유 항구에서 배로 부산항까지 실어 오고, 다시 부산에서 서울까지 트럭으로 날랐다. 1.5~11t짜리 작품들이 들어오느라 미술관 입구의 보도블록 일부가 깨졌다.

브네의 작품은 파리 에펠탑 앞, 베를린 우라니아 광장 등 세계 주요 공공장소에 설치돼왔다. 그는 열을 가하면 휘어지는 철인 ‘압연강’을 사용한다. 육중한 조각이지만 그 이면에서 작가의 지적인 개성을 읽을 수 있다. 수학의 부호와 방정식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각도기를 60˚만큼만 잘라낸 모양의 철조각에 60˚라고 새겨 넣는 식이다. 작품을 직접 설치하러 서울에 온 작가는 “여러분이 보시는 것은 여러분이 보시는 것 이상도 이하도 절대 아닙니다”라고 설명했다.

“이건 그냥 60˚각도일뿐 어떤 다른 형태로도 보지 마시라는 얘기입니다. 관객의 주관적 해석을 배제하는, 원래 주어진 하나의 의미 이외에는 아무것도 뜻하지 않는 ‘단의성(單義性·monosemy)’을 미술작품에 실현한 것이니까요.” 그는 “19세에 처음 작품을 시작할 때부터 예술가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는 게 아니라 모든 것에 문제제기를 하는 급진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람이나 풍경을 작품에 담는다면 왜 수학은 작품에 담을 수 없을까 생각했지요. 수학을 미술에 도입하는 방법으로 구상도 추상도 아닌 중간 단계의 예술작품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는 녹슨 철을 그대로, 석탄 덩어리를 그대로 쓴다. 색을 칠하거나 다듬지 않는다. “재료 그 자체가 예술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브네는 “내 전시는 쉬운 전시가 아니다”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작품을 해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린다면 무쇠 덩어리로 허공에 드로잉한 작품들이 더없이 매력적이다.

미술관 주차장은 무료지만 주말에는 오전 11시 이전에 가야 자리가 있다. 늦으면 서울대공원 주차장에 세워두고 셔틀버스나 코끼리열차를 이용해 올라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