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과학자들, 21세기 공연을 발명하다

지금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공연 한 편이 영글고 있다. KAIST 문화기술대학원이 고양아람누리와 공동 제작하는 디지털 퍼포먼스 ‘신타지아(Syntasia)’다. 무용수가 아바타(avatar·가상공간의 캐릭터)와 춤을 추고, 앉은 자리에 따라 체험하는 감정이 다르고, 관객이 휴대전화로 참여해야 완성되는 미래형 공연이다. 가상현실(VR) 등 10년 뒤에나 보편화될 공연 방식을 미리 만나는 셈. 임창영 교수(디지털미디어디자인)는 “첨단 과학의 다양한 분야가 한 공연에 개입하기는 세계 최초”라고 말했다.

■무용수가 아바타와 함께 춤을 

가상현실 연구센터에서는 머리부터 발 끝까지 검은 특수복장을 한 무용수(박신영)가 춤을 추고 있었다. 8개의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된 그 동작들은 곧바로 컴퓨터에 저장됐다. 무대에서 아바타들이 출 춤의 기초 재료들이다. 김이경 교수(시노그라피)는 “아바타들과 무용수가 상호작용하는 것처럼 보이려면 세밀한 모션캡처가 필요하다”며 “아바타는 목탄화나 크로키 방식으로 사람 냄새 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가 김탁환이 시놉시스를 쓴 ‘신타지아’는 2040년 느닷없이 디지털 문명을 잃어버린 스무 살 여성이 주인공. 연출을 맡은 구본철 교수(컴퓨터음악)는 “디지털에만 의존하다가 한순간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는 문명에 대한 경고”라고 했다.

■관객의 감정까지 실험 

같은 공연을 봤는데 관객은 희로애락의 서로 다른 감정을 체험한다. 여러 개의 지향성 스피커를 쓰기 때문에 가능하다. 핀라이트와 같은 원리다.

‘신타지아’를 올릴 새라새극장은 국내 하나뿐인 첨단 공연장이다. 객석이 수평·수직 이동하는 16 조각으로 짜여 있고, 무대도 틀이 없는 가변형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객석을 네 구역으로 나눠 네 가지 다른 음악을 지향성 스피커로 쏜다. 같은 장면을 보면서도 어느 관객은 슬픈 음악을, 어느 관객은 즐거운 음악을 듣는 것이다.

지향성 스피커의 등장은 국내 공연 사상 처음이다. 관객은 소리가 갈라졌다 모아지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이승연 교수(컴퓨터음악)는 “잡음을 음악으로 변화시킬 ‘필름 스피커’, 소리에 입체감을 주는 ‘무빙 스피커’도 이용할 것”이라고 했다.

■관객과 휴대전화로 접속 

관객에게 “휴대전화는 반드시 켜두세요”라고 부탁하는 것도 이 공연만의 특징. 휴대전화로 관객이 참여해야 진행되는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배우가 투명 스크린에 미완성 영상(로봇 또는 천사 모양)을 뿌리고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선착순으로 관객 약 30명이 접속해 그 조각들을 정해진 자리에 옮겨놓아야 한다. 임창영 교수는 “어질러진 오브제를 관객의 손으로 정돈하는 퍼즐 맞추기”라고 설명했다.

IT강국 한국에서 미래형 디지털 퍼포먼스 1호로 기록될 ‘신타지아’는 이 밖에도 6개의 망사막과 프로젝터로 입체감을 표현하는 멀티프로젝션, 세그웨이를 타면서 추는 춤 등을 보여준다. 휴먼로봇 연구로 유명한 오준호 교수, 영화 ‘수퍼맨 리턴즈’ ‘반지의 제왕’의 특수효과를 맡았던 노준용 교수가 참여하고 있다.

▶6월 23일부터 7월 15일까지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 ‘신타지아’는 ‘synthesis’와 ‘fantasia’의 합성어다. 공연 시간 50분. 1577-77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