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편지] ■ 그림 사는 의미

“재벌이 된 기분이에요. 오늘 캔버스하고 물감 사러 가요. 너무 감사해요. 기분 최고예요!” 한전 아트갤러리에서 생애 첫 개인전을 가진 새내기 전업화가가 내게 보낸 문자 메시지이다. 한전에서는 젊은 미술가를 선발해 무료로 한전 아트센터 갤러리를 빌려주고 있다. 금전적 어려움을 겪는 젊은 화가들이 여기에 선발되어 개인전을 갖는다는 것은 큰 영광이고, 전업 화가로서의 출발점으로도 여겨진다.

나는 이곳에서 어눌한 말투로 자기 그림을 설명하던 그녀를 처음 만났다. 그녀는 몇 년 동안 어린이들을 가르치다가 28세의 늦은 나이에 미대에 진학해 전업화가가 되었지만, 수입이 거의 없어 대학 후배에게 얻은 그림물감을 아껴 쓰며 값싼 롤 형태의 캔버스나 일반 종이에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작품을 몇 점 구입했는데, 작품 값을 스스로 매길 줄도 모르는 진짜 순새내기 작가였다. 그래서 구매자인 내가 값을 결정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노력과 열정에 비하면 결코 비싸지 않은 가격을 지불하고, 집안에 걸어놓고 보니 그녀의 작품뿐 아니라 그녀의 해맑은 미소와 순수한 마음까지도 걸어 놓은 것 같았다.

얼마 전 45억원에 낙찰된 박수근의 ‘빨래터’ 그림을 감싸고 있는 낡은 액자에는 하얀색이 덧칠해져 있다고 한다. 1950년대 박수근이 물감과 캔버스를 사기도 어려웠을 시절, 자신을 도와줬던 한 미국인에게 그 그림을 선물하면서 고마운 마음을 더하기 위해 나무액자에 흰색의 물감을 덧칠해 준 것이다. 그림을 산다는 것은 작가의 마음을 사는 것이고, 구입 당시의 느낌과 상황을 함께 사는 것이다. 이 그림이 낙찰된 순간, 그 미국인은 어쩌면 그림 선물을 받을 당시 박수근의 모습을 떠올리며 눈가에 눈물이 고이지는 않았을까? 나는 그림을 사지 않는다. 작가의 아름다운 마음을 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