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만에 독주음반 낸‘가야금 명인’황병기
1999년, 가야금 명인 황병기(71)씨는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 비슷한 시기, 함께 수술 받은 사람 가운데는 숨을 거둔 이도 있었다. 2주에 걸친 대수술 뒤, 링거 병을 꽂은 채 한밤중 절뚝절뚝 병원을 걷던 황씨 눈앞에 서울대병원의 시계탑 건물이 보였다. 어릴 적부터 북촌 가회동에서 살아온 그가 그 시계탑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그야말로 비참한 상태에 있으려니, 아름다움이 더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건물의 아름다움을 4개 악장의 17현(絃) 가야금 곡으로 풀어냈다. 황씨는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32번)의 마지막 악장(2악장)에서 영감을 받아 어둠 속에서 반딧불이 춤추는 듯한 환상을 담아내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쓴 ‘시계탑’을 포함한 가야금 곡들을 엮어 황병기씨가 다섯 번째 독집 음반 ‘달하노피곰’을 펴냈다. 13년 만의 독집이다.
음반 이름이자 첫 곡의 제목인 ‘달하 노피곰’은 백제 가요 ‘정읍사’의 구절이다. 황씨는 “사랑 노래는 대개 이루지 못한 사랑이나 만나선 안 될 불륜을 그리고 있는 데 비해, 이 노래만큼은 부인이 남편을 그리워하는 지고지순(至高至順)함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 5장 휘모리에는 동요 ‘달아 달아 밝은 달아’의 가락이 살짝 녹아 있다.
그는 “누구나 국악의 대중화, 세계화, 상품화를 말하기에 오히려 거꾸로 가고 싶었다. 세계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도 세계화의 방법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