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모호한 추상화에 반기… 확실하게 보여주마

예르크 임멘도르프, 게오르그 바셀리츠, A.R. 펭크, 마르쿠스 루퍼츠 등 독일 신표현주의 작가들 이름이 최근 1~2년 사이 우리 전시에 적잖이 등장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잊을 수 없는 기억: 게오르그 바셀리츠의 러시안 페인팅’(7월 15일까지·02-2188-6000)은 그 중 바셀리츠(69)가 1998년부터 2002년까지 한 ‘러시안 페인팅’ 시리즈 작품만 41점을 모아 여는 전시다. 하나의 특정 주제로 묶여 있으면서도 이 작가가 어떤 작가인지, 독일 신표현주의는 무엇인지 볼 수 있어 재미있다.

신표현주의는 1970년대부터 나타난 경향으로, 작가들은 손에 만져질 듯 거친 질감에 뚜렷한 색깔을 써서 ‘확실하게 보여지는 그림’을 그렸다. 개념미술이나 추상미술의 ‘애매모호함’에 반기를 든 것이었다.

이 전시에서 바셀리츠가 레닌의 초상화, 노동자들의 군상 등 사회주의 이미지를 어떻게 그려냈는지 보면 이해가 쉽다. 동독 출신의 바셀리츠는 ‘러시안 페인팅’이라 이름 붙인 이 시리즈에서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보아왔던 과거 러시아 사회주의 미술의 이미지를 빌려 썼다. 하지만 강렬한 원색의 점을 콕콕 찍고 붓을 좌우상하로 거칠게 쓸어내려, 레닌이나 노동자라는 모델 자체 보다는 그런 것을 표현한 ‘기법’에 집중했다. 바셀리츠는 특히 그림을 거꾸로 또는 옆으로 거는 것으로 유명하다. 거꾸로 걸었기에 무엇을 그린 것인지 한눈에 쏙 들어오지 않는다. 관객들에게 그림의 모델이 무엇인지 신경 쓰지 말고 붓터치나 색깔 등 표현기법에 신경을 써서 보라는 뜻이다. ‘회화’는 그저 캔버스에 물감을 칠한 ‘회화’일 뿐이라고 강조하는 듯하다.

우리나라에 처음 선보이는 ‘러시안 페인팅’ 시리즈는 그의 전형적인 작품들 보다는 훨씬 가벼운 느낌이다. 색의 강도와 두께를 덜어내서 마치 수채화 같다. 바셀리츠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워싱턴 스미소니언 미술관, 베를린 국립갤러리, 파리 현대시립미술관 등에서 전시를 해왔고, 오는 9월 런던 로열아카데미에서 회고전이 있는 독일의 중요한 현대작가다. 파리와 잘츠부르크에서 바셀리츠를 10여년간 다루고 있는 아트 딜러인 타대우스 로팍(Thaddaeus Ropac)씨는 이번 전시를 계기로 방한했을 때 “러시안 페인팅은 바셀리츠가 4~5년간 집중했던 가장 큰 규모의 시리즈이면서 작가가 표현을 다양화한 것을 볼 수 있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