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는 그림으로 생각하는 지식인이에요”

제52회 베니스비엔날레가 10일 개막을 앞두고 언론에 먼저 문을 연 7일, 한국 화가 이우환(71)은 ‘팔라조 팔룸보 포사티(Palazzo Palumbo Fossati)’라는 작은 궁전 속에 추상화 10점과 설치작품 10점을 말없이 채워 넣고 있었다. 전시제목은 ‘공명(共鳴·Resonance)’. 국제적 화가인 이우환은 색과 모양을 극도로 절제한다. 이번에 베니스비엔날레 협력전(collateral events) 중 개인전을 후원 받은 몇 안 되는 작가가 됐다.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본전시와 각 나라별로 여는 국가관 전시에 더불어 협력전 34개도 중요한 전시다.

이우환은 처음엔 “화가가 얘기를 하는 건 쑥스러우니까 뭐 묻지는 마세요” 라며 얼굴 맞대기를 꺼렸다. 한참 지나서야 조금씩 말을 시작했다. 먼저 현대미술의 복잡함에 대해 얘기했다. “현대에는 하이 테크놀로지가 문명 전반을 좌우하기 때문에 미술에서도 테크놀로지가 중요해진 것은 어쩔 수 없어요. 테크놀로지가 예술을 돋보이게 하는 데 기여한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첨단 예술도 중요하지만, 잠시 서서 반성하고 주변을 정리하는 예술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한편에서 나 같은 사람은 복잡한 오늘의 상황에 대해 반성해 줄 필요도 있어요.”

단색의 점과 선으로만 구성된 ‘점으로부터’와 ‘선으로부터’ 시리즈로 유명한 이우환은 최근 절제가 더 심해졌다. 아예 점 하나만 덜렁 그려 놓는다. 있는 듯 없는 듯한 그림은 그러나 즉흥적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예술가라면 자기 이론을 가져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실제로 많은 이론서와 비평서를 썼다. 1956년에 일본으로 건너간 뒤 그 곳에서 활동해 일본의 현대미술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예술가는 지식인이에요. 역사상 모든 위대한 미술가들은 이론가였어요. 추사나 겸재가 그랬지요. 근대 이후에 어쩌다 화가가 그림쟁이가 됐지만, 그림은 원래 생각하는 매체예요. 과학자는 연구를 통해서, 화가는 그림을 통해서 생각을 하는 거예요.” 이우환은 현재 일본과 파리를 오가며 작업을 한다. 해외에서 그의 전시는 늘 현재진행형이다. 최근엔 미술시장에서도 많이 거론됐다. 지난달 뉴욕 소더비에서 추상화 ‘점으로부터’ 한 점이 194만4000달러(약 18억원)에 낙찰되는 등 국내외 경매에서 값이 치솟는다. 서울옥션이 분석한 자료에서는 지난 5년 동안 가격상승률이 가장 높은 작가로 나왔다. 하지만 이 얘기를 꺼내려 하자마자 그는 손사래를 하며 얼굴을 찌푸렸다.“제발 그런 거에서 내 이름은 빼주세요. 너무 싫어요. 이젠 내 작품도 속되게 됐다는 뜻인데…. 오늘날 미술은 아트페어나 옥션을 통해서도 알려지는 게 사실이지만, 그런 건 주식시장 같은 거지 예술과는 아무 관계도 없어요. 하나도 안 팔려도 훌륭한 예술이 있고, 잘 팔려도 좋지 않은 예술이 있어요. 난 정말이지 내 작품이 그런 데 안 나왔으면 좋겠어요. 언론이 너무 그러는 것도 싫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