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민이 하면 공포영화도 다르다는걸 보여주고 싶었죠"

약속된 인터뷰 시간은 오전 11시인데 시계 바늘은 11시 5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요즘 연예인들에겐 지각이 기본 매너처럼 돼 버렸으니 그려러니 했다. 한데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 황정민은 기자가 민망할 정도로 "늦어서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 황정민이지만, 그도 하나 못 가진 게 있는 듯 했다. 웬만한 신인들까지 다 갖고 있는 '스타 의식'이 그에게만은 예외인 것처럼 보였다.

-이번 영화 '검은집'(감독 신태라, 제작 CJ엔터테인먼트)은 공포영화인데요. 출연 계기가 있다면.

▶배우가 장르 구분을 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오래 전에 우연히 원작을 읽어보고 매료됐는데, 마침 출연 제의가 와서 선뜻 결정하게 됐어요. 뻔한 공포영화라면 하지 않았을 겁니다. '웰메이드 공포'를 만들고 싶었어요.

-공포영화 출연은 데뷔 후 처음인데,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그러니까 배우하겠죠?(웃음) 다만 특별한 장르이니만큼 사전 준비를 많이 했어요. 특히 '검은집'이 '싸이코패스'를 다룬 영화라서 그 부분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했어요.

-'싸이코패스'라….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싸이코'나 '똘아이'와는 뭐가 다른가요.

▶이 사람들은 병을 앓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감정이 없어요. 자신의 욕망 충족을 위해 사람들을 그냥 죽일 수도 있어요. 참 무섭죠. 그런데 이젠 연민을 느끼기도 해요. 병이란 게 앓고 싶어서 앓는 게 아니잖아요. '싸이코패스'도 마찬가지죠.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났으니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못 느끼잖아요. 불행한 거죠.

-스스로 '똘끼'가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거나, 주변에서 '싸이코패스'같은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저나 제 주변에 있는 연극, 영화인들 모두 감정적인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싸이코패스'와는 거리가 먼 것 같아요. 다만, 일을 할 때 만큼은 제 스스로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평소엔 매사에 '그러려니' 하는 편이데, 일할 때 만큼은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식으로 물고 늘어지거든요.

'싸이코패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초여름 더위에도 머리털이 주뼛 섰다. 이제 개봉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검은집'의 공포지수는 조만간 관객들이 매길 터. 잠시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려봤다.

-'너는 내 운명'의 파트너 전도연이 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는데, 혹시 영화제 수상에 대한 욕심은 없나요.

▶(손사래를 치며)절~대요. 상 때문에 배우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상이라는 게 인연이 닿아야 받는 것 아니겠습니까. 받으면 너무 기쁘고 자랑스러운 것이지만, 그걸 위해서 아등바등한다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상보다는 한국영화에 관객이나 좀 많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요즘 배우들의 해외 진출 소식이 들려오는데요.

▶그냥 안에서나 잘 하겠습니다. 배우에게 발음과 발성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런데 일단 말도 안 되고…. 굳이 안 되는 영어 하면서 외국 사람들한테 어눌하게 보이긴 싫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영화계를 지키겠습니다.

황정민은 마치 자신의 집에 온 손님을 배웅하듯 끝까지 따라나서며 작별 인사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이처럼 지극히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그가 감정도, 죄의식도 없는 '싸이코패스'와 한판 대결을 펼친다. '검은집'은 오는 21일 개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