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미울 만큼 야무진 22세

‘야무지고 똑부러지는 슈베르트’는 마치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형용 모순으로 들린다. 하지만 그런 슈베르트도 가능하다는 걸 22세의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보여줬다. 지난 7일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피아노 리사이틀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마친 뒤 독일 하노버 음대로 유학을 떠난 연주자에게 이 날 리사이틀은 반년만의 복귀 무대이기도 했다. 손열음은 슈베르트의 소나타 D.959와 슈만의 ‘다비드 동맹 무곡집’을 골라 들었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는 ‘신동’에서 ‘중견’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있는 젊은 연주자들이 즐겨 선택하는 레퍼토리다. 하지만 알프레드 브렌델(Brendel) 같은 명피아니스트에게는 평생의 과업처럼 따라다니는 곡이기도 하다. 슈베르트의 후기 소나타는 대곡(大曲)의 형식을 띠고 있으면서도, 작곡가 특유의 노래가 곳곳에 스며있다. 손열음은 노래해야 하는 대목과 기교를 필요로 하는 대목을 얄미울 만큼 말끔하게 구분했다. 특히 쉼표를 적절히 활용하는 4악장에서는 성숙미가 흠씬 묻어 나왔다.

슈베르트와 슈만은 피아노 곡뿐 아니라 가곡에 대한 천착(穿鑿)으로도 유명하다. 손열음은 스스로 A4 용지로 2페이지에 이르는 프로그램 노트를 빼곡하게 채우며, 이 음악회가 가곡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는 점을 일러줬다.

2부 슈만에서는 ‘거칠고 재미있게’ ‘섬세하고 노래하면서’ ‘유머를 가지고’ 등 악보에 적힌 지시구에 충실하려 애썼다. 특히 2권 4번째 곡에서 건반을 장악하는 힘을 유감 없이 드러낸 뒤, 곧바로 표정을 바꿔 5~6번째 곡에서 연이어 유려하게 노래하는 대목이 리사이틀의 절정이었다.

연주자의 큰 후원자였던 고(故)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의 부인 마가렛 클라크 박(75) 여사가 고인이 평소 즐겨 앉던 좌석(G7석)에 앉아 연주를 경청하는, 흐뭇한 풍경을 연출했다. 손열음은 오는 15일(예술의전당)과 16일(부천시민회관) 부천 필하모닉(지휘 스테판 블루니에)과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를 협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