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저음, 꿈은 고음

지난 3월 독일의 쾰른 오페라 극장에서 이틀에 걸쳐 ‘오페라 실험’이 벌어졌다. 공연 시간만 16여 시간에 이르는 바그너의 4부작 음악극 ‘니벨룽의 반지’를 밤낮도 없이 몰아치듯 무대에 올린 것이다. 오전 11시부터 1부 ‘라인의 황금’을 2시간 40분 가량 공연한 뒤, 그 날 오후 5시부터 곧바로 2부 ‘발퀴레’를 무대에 올렸다. 다음날에도 아침 11시부터 3부 ‘지그프리트’, 오후 5시부터는 가장 긴 4부 ‘신들의 황혼’이 시작돼 밤 11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쾰른 오페라 극장 전속 가수로 활동 중인 베이스 바리톤인 사무엘 윤(36)도 두 개의 배역(돈너·군터)을 맡으며 이 공연에 참여했다. “끝날 즈음, 그동안 무대에서 썼던 소도구를 모아서 불을 질러요. 여 주인공 브륀힐데가 떨어지는 대목에서는 무대 위에서 비처럼 물이 쏟아졌어요. 자욱한 연기가 객석까지 번지면서 자연스럽게 막이 내립니다.”

사무엘 윤은 “연출가(로버트 카슨)의 설정에 관객들은 박수를 보내지만, 혹시 사고라도 일어날까봐 무대 뒤에는 항상 소방수 10명이 대기하고 있었다”며 웃었다. 사무엘 윤은 지난 2004년부터 ‘바그너의 성지’인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파르지팔’과 ‘탄호이저’에 잇따라 출연하고 있다.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수학했지만, 1999년 독일 쾰른으로 무대를 옮겼다.

“이탈리아 오페라는 너무나 작품이 많기 때문에 평생 공부해도 모두 소화하기가 쉽지 않아요. 일부러 역을 맡지 않으면 독일 오페라는 만나기 쉽지 않죠. 그래서 성악가들이 오히려 안주하기도 쉬워요.”

막상 독일로 무대를 옮겼지만, 처음 몇 달간은 ‘언어 장벽’ 때문에 고생이 적지 않았다. 무대 연습 때는 작은 녹음기를 들고 가서 녹음한 뒤, 집으로 돌아와서 자신의 발음을 처음부터 다시 들었다. “남들과 연습하다 보면 자기 목소리는 정작 잘 들리지 않아요. 그만큼 객관적이기 힘든 거죠.”

그렇게 ‘구박 받으며’ 독일어를 익힌 건 바그너 오페라에 대한 열정 때문이기도 했다. 2002년 처음 ‘니벨룽의 반지’ 역할을 제안 받았을 때는 레코드 가게로 곧장 달려갔다. 20~30장 되는 음반을 사 들고 전부 들어봤다고 했다. 그는 “막상 악보에는 별 내용이 없는 것 같지만 뜻과 내용, 줄거리부터 신화적 배경까지 모든 것이 처음부터 다시 들어왔다”고 말했다.

왜 바그너일까. 사무엘 윤은 “다른 오페라에서는 오케스트라 선율에 소름이 끼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바그너는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에 가수가 먼저 매료되고 그 힘을 받으면서 노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꿈도 ‘니벨룽의 반지’ 가운데 저음 가수가 맡을 수 있는 최고의 역인 보탄(‘신들의 신’)을 맡는 것이다. “제 꿈은 이미 조금씩 실현되고 있어요.” 19일 오후 5시 성남아트센터에서 국내 첫 리사이틀을 갖는다. 공연 문의 (031)783-8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