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고바우’가 6·25 전쟁터서…”

“총소리, 대포 소리 들어가며 그렸던 그림들이에요. 지금 보니 저도 감회가 새롭네요.” ‘고바우영감’의 시사만화가 김성환(金星煥·75·사진) 화백이 6·25 당시 전쟁터를 누비며 남몰래 그려놓았던 기록화 100점을 57년 만에 세상에 공개했다. 이 그림들은 지난 12일 일본에서‘조선전쟁 스케치’(쿠사노네〈草の根〉출판회 간)라는 화집으로 묶여 발간됐다. 김화백은 “한때 이 그림들의 국내 상설전시도 추진했으나 조건이 안 맞아 성사되지 못했는데 이 그림의 존재를 알게 된 일본 출판사측이 간곡하게 요청해와 출간하게 됐다”고 말했다.

 

 

50년 6월 25일.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살고 있던 고교 3년생 김성환에게 전쟁 발발은 두려운 소식이었다. 그러나 남다른 그림 솜씨로 주간만화잡지에 그림을 기고하는 ‘기자’였던 그는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거리로 연필을 들고 나갔다.

“어린 나이였지만 너무나 엄청난 역사의 순간들이 눈앞에서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거리 풍경들을 수첩에 재빨리 그려놓았다가 집에 돌아와서는 잊어버릴세라 허겁지겁 수채 물감으로 그렸지요. ”

전쟁 터진 지 3일째 되던 6월 27일 정릉에서 바라본 의정부 쪽 시커먼 대포 연기를 그린 그림이 제1호였다. 이후로 51년 10월까지, 김성환의 두 눈은 ‘종군기자의 카메라’가 됐다. 당일 풍경은 당일에 그렸고 모든 그림엔 날짜를 적었다. 서울 폭격 장면을 그린 1950년 9월 25일 그림엔 ‘5시25분 현재’라고 시각까지 명시했다.

6·25 기록사진들이 숱하게 있지만, 김성환의 6·25기록화들은 전쟁터 한복판에서 실시간으로 그려낸 기록화라는 점에서 유례가 드물다.

“이 그림 좀 보세요. 50년 6월 27일 서울 돈암동 거리에 나가 국군병사와 피란민들을 그린 수채화인데, 요 얼룩은 그날 오후 내린 부슬비 때문에 생긴 거예요. 그때 그 빗방울 자국이죠.”

주택가에 숨어 있던 국군 패잔병이 북한군에게 발각돼 백지장처럼 창백한 얼굴로 끌려 나오는 장면처럼 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는 상황들도 그림이기에 묘사할 수 있었다.

국군이 쓰다 버린 피투성이 야전침대를 ‘재활용’해보려는 아저씨가 핏자국을 물로 씻어내는 장면, 서울 거리의 시신들을 수습하지도 못해 그냥 산처럼 수북이 쌓아놓거나 보도블록 조각으로 덮어놓은 모습 등은 전쟁의 참혹함을 새삼 실감하게 한다.

고교생 김성환은 전쟁통에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이리저리 피란할 때에도, 그려놓은 전쟁 수채화들과 물감만은 빠뜨리지 않았다. “끼니는 걸러도 그림 그리기를 거를 수는 없다는 마음으로 그렸던 그림들”이라고 그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