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 실수의 게임

〈제11보〉(173~196)=현대바둑은 ‘누가 좋은 수를 두느냐’보다는 ‘누가 나쁜 수를 덜 놓느냐’의 경쟁이라고들 한다. 아무리 고수(高手)들이라도 이 원리는 예외 없이 적용된다. 특히 이 바둑처럼 ‘큰 판’일 때, 그리고 형세가 미세하게 반전을 거듭할 때 승부를 결정하는 최대 변수는 ‘실수’일 경우가 태반이다.

 

173은 사이비(似而非) 맥점. 178까지 되고 보니 참고 1도처럼 평범히 처리한 것과 비교해 2집을 손해 봤다. 백의 입장에서 2집이면 시쳇말로 ‘대박’이다. 형세도 순식간에 혼미해졌다. 하지만 그것은 출발에 불과했다. 실수는 실수를 부른다더니 179가 잇단 미스 블로. 181로 단수쳐야 했다. 흑의 위기!

한데 이번엔 백이 ‘본 헤드 플레이’를 연출한다. 최면이라도 걸린 듯 180에 이어버린 것. 이 수로는 당연히 182로 받고 선수를 뽑아야 했다. 참고 2도의 수순이었으면 백이 최소한 반 집은 남겼을 것이다. 실전은 참고 2도에서 좌변을 넘지 않고(6집) A(2집)에 둔 격이다. 191까지 돼선 다시 흑의 미세한 우세. 드라마는 이 뒤에도 한 동안 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