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를 하라”… 편견 깬 트롬본

단 한 순간도 가만히 서있지 않았다. ‘트롬본의 파가니니’로 불리는 스웨덴의 연주자 크리스티안 린드베리(Lindberg)는 보라색이 섞인 푸른 티셔츠에 넥타이 없이 단추 둘 정도 풀어헤친 편안한 차림으로, 펄쩍펄쩍 경쾌하게 뛰어들어왔다. 그는 입장과 퇴장 때 단 한 번도 걷는 법이 없었다. 19일 LG아트센터에서 열린 노르딕 체임버 오케스트라와의 내한 공연이었다.

비올라와 첼로 파트 사이에는 린드베리를 위한 연단이 마련됐다. 오케스트라의 한복판에서 객석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트롬본을 연주하고 동시에 지휘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독주가 끝나면 때로는 한 손으로, 때로는 악기나 약음기를 가볍게 흔들며 온 몸으로 지휘했다.

레오폴트 모차르트의 ‘트롬본 협주곡’에서는 지휘와 트롬본 협연을, 자신의 곡인 트롬본 협주곡 ‘아라벤(Arabenne)’에서는 지휘·연주·작곡까지 함께 선보였다. 한껏 숨을 모았다가 터뜨리고, 자유자재로 응축과 폭발을 반복하면서 ‘트롬본은 낮고 무겁고 둔중하다’는 고정 관념을 마구 흔들었다. 수원시향 트롬본 주자 박종세씨는 “하모닉스와 글리산도 등 트롬본으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테크닉을 무대에서 보여줬다. 때로는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끼와 역동성이 넘쳤다”고 말했다.

모차르트의 교향곡 41번 ‘주피터’와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1번 ‘고전’에서는 린드베리 자신이 상임 지휘자를 맡고 있는 노르딕 체임버의 지휘봉을 잡았다.

30명 안팎의 편성으로 강세 변화를 통해 다이내믹함과 날렵함을 강조했다. ‘달리는 지휘자의 달리는 교향곡’이었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속도를 내는 바람에 앙상블이 흐트러지는 대목도 적지 않았다.

앙코르에서 린드베리는 “스웨덴은 클래식 음악도 훌륭하지만, 팝 음악도 그에 못지않다”며 아바(ABBA)의 히트 곡 메들리를 들려줬다. ‘맘마미아’ ‘머니 머니 머니’ 같은 흥겨운 멜로디가 오케스트라 연주로 울려퍼지자 객석에선 어느 때보다 뜨거운 박수가 터졌다.

곧이어 린드베리의 팬을 수없이 양산했던 ‘왕벌의 비행(림스키 코르사코프)’을 트롬본으로 연주하다가 숨을 헐떡이는 듯한 시늉으로 마무리 지었다. 독주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 다소 아쉬웠지만, ‘트롬본 주역의 클래식 버라이어티 쇼’는 흥겹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