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에서 찾아오는 뜨거운 오페라 ‘카르멘’

올 여름 한국에도 서늘한 북구에서 온 뜨거운 오페라 ‘카르멘’이 공연된다. 러시아의 스타니슬라브스키 극장 오페라단이 28~30일 고양아람누리에서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막이 오르면 금발의 젊은 여인 ‘카르멘’이 아슬아슬할 정도로 노출이 심한 나이트가운을 입고 등장한다.

카르멘은 극중 2층으로 무대를 가로지르는 난간에서 노래한다. 이 난간은 건물과 지붕, 다리 등으로 활용되면서 사랑과 화해, 살인의 배경으로 쓰인다. 러시아 명(名) 연출가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이름을 딴 이 극장은 오페라에서도 성악 못지않게 연기를 강조한다고 고양아람누리측은 전했다.

독일 뮌헨의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극장과 프랑스 리옹 오페라 극장 등에서 ‘카르멘’ 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메조 소프라노 엘레나 막시모바(Elena Maximova)가 주역 카르멘을 맡는다. 이 극장 예술 감독인 알렉산더 티텔의 연출, 볼프 고렐릭의 지휘로 스타니슬라브스키 극장 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

‘카르멘’은 원래 뜨거운 오페라다. 이 집시 여인은 새롭게 찾아오는 사랑도, 운명처럼 기다리는 죽음도 애써 피하려 들지 않는다. 평생 북구 신화에 바탕한 바그너의 오페라에 천착했던 철학자 니체가 작곡가와 결별한 뒤, 빠져들었던 오페라가 비제의 ‘카르멘’이었다.

바그너의 ‘파르지팔’을 본 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침몰해버렸다”고 비난했던 니체는 “어제 비제의 걸작을 스무 번째 들었다. 이 음악은 가볍고 탄력 있으며 정중하게 다가온다. 비제는 나를 비옥하게 한다”며 ‘카르멘’을 격찬했다.

이 뜨거운 오페라는 어디까지나 유럽 남부의 전유물이었다. 올해 타계 30주기를 맞은 전설적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그리스)를 비롯해, 메조 소프라노 테레사 베르간사(스페인)와 아그네스 발차(그리스)까지 ‘카르멘’은 지중해 연안 가수들의 몫이었다.

북구의 여인도 카르멘을 연기할 수 있다는 걸 입증한 성악가는 스웨덴 출신의 메조 소프라노 안네 소피 폰 오터(Anne Sofie von Otter)다. 평소 지성적이며 학구적인 자세로 독일과 북구의 노래에 애정을 쏟았던 이 가수는 2004년 영국 글라인드본 페스티벌에서 카르멘을 맡았다.

남성의 허벅지를 두 손으로 쳐가며 박자감을 만들고, 농염하게 무대를 돌며 2막 아리아를 부르는 폰 오터의 연기는 ‘차가움’과 ‘뜨거움’이 절묘하게 혼합돼 있기에 더욱 뇌쇄적이다. 이 공연 영상은 DVD로도 소개돼 있다.

이번에 내한하는 ‘카르멘’ 역시 남부 유럽의 ‘뜨거움’과 러시아의 ‘차가움’이 부딪히면 격렬하게 끓어오를까, 식어서 녹아버릴까.

▶오페라 ‘카르멘’ 28~30일, 같은 극단의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차이코프스키)은 7월 5~7일. 고양아람누리. 공연 문의 1577-77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