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촉한 시선] 양치기 소년, 신지식인 그리고 심형래

우선 6년 전 ‘용가리’(2001년 개봉)에 관한 추억부터. 전설의 괴수 용가리는 불쌍하게도 밤에만 스크린에 등장했다. 백주대낮을 배경으로 하면 허름한 CG(컴퓨터 그래픽) 티가 너무 많이 났던 것. 감독이었던 심형래는 관객들로부터 “용가리가 방범(防犯)대원이냐”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물론 한 영화평론가는 “밤에도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는 혹평까지 퍼부었지만.

심형래가 돌아왔다. 이번에도 역시 용이다. “용(Dragon)의 전쟁”이란 의미의 새 SF 영화 ‘디 워’(D-War). 한국개봉은 8월 2일로 일찌감치 확정했고, 8월 말 9월 초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던 미국 개봉날짜도 9월 14일로 결정된 모양이다. 7월 23일 시사회에서 전모가 공개되겠지만, 약 1분 분량의 특수효과 위주 동영상에서 2007년의 용과 이무기는 대낮에도 LA도심의 고층빌딩을 휘감고 포효한다. ‘대낮의 용’이 흥행의 보증수표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방범 드래곤’ 운운은 피할 수 있을 전망이다.

‘영구와 흡혈귀 드라큐라’(1992) 이후 벌써 11번째 연출작인데도, 대중은 여전히 그를 코미디언이라는 직함으로 먼저 기억한다. 그리고 하나 더. 심형래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양치기 소년’이다. 물론 예전 ‘용가리’의 족쇄 탓이다. DJ 정권 시절만 해도 ‘용가리’는 할리우드와 당장 맞짱이라도 뜰 분위기였다. 정권은 자발 맞게 ‘신지식인’이라는 훈장까지 붙였다. ‘감독’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제작자’ 심형래가 그런 분위기를 즐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 개봉 이후 평가는 수직으로 곤두박질했고, 대중의 일반적 반응은 “속았다”는 것이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섣부른 예단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 심형래와 그의 영화에 대해서는 수많은 왈가왈부가 있었던 만큼 같은 이야기를 보태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단 하나. 영화계나 관객이나 똑같은 우를 반복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한국영화가 부진한 탓도 있겠지만, 벌써부터 ‘디 워’에 대해 “한국영화의 구원투수”니, “위기에 빠진 충무로의 구세주”니 하는 표현들이 출몰한다. 그때의 교훈 탓인지 ‘숨기기 마케팅’을 하던 이 영화의 투자·배급사도 28일에는 “올 여름 최고의 기대작 입증”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홍보 메일을 보내왔다.

‘디 워’는 기본적으로 특수효과로 승부하는 SF영화다. 영구아트무비의 놀라운 기술력 발전을 120% 인정한다고 해도, ‘스파이더맨 3’와 ‘트랜스포머’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자극 받은 관객들을 그 이상으로 만족시킬 수 있을까. 더군다나 눈높이로 따지자면 전 세계 최강이라는 한국 관객에게.

필요 이상의 기대도, 실제 이상의 폄하도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 ‘과잉’과 ‘과소’만 없다면 심형래와 ‘디 워’는 이미 작지 않은 성취를 거두고 있다. 프리스타일이라는 미국의 배급사가 약속한 전미 1500개 수준의 극장 개봉과 관련 비용 일체부담은 결코 작지 않은 수준이다. ‘스파이더맨 3’가 4000개 극장에서 개봉했고, 한국 최고의 히트작이었던 ‘괴물’도 70개 수준에서 시작한 터다. 더구나 이런 유(類)의 괴수 SF영화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대한 눈높이를 지닌 나라가 아닌가. 한국이 아닌 미국의 틈새 시장을 뚫은 영화인으로서, 심형래는 그 정도의 몫을 누릴 자격은 충분히 있다. ‘신지식인’이라는 정체불명의 호칭과 상관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