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음악가 뒤엔 항상 그가 있었다

노장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화려하게 돌아올 뿐이다. 스위스 출신의 명 지휘자 샤를르 뒤트와(70)는 최근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미국과 영국의 명문 교향악단 두 곳을 함께 책임지게 됐다. 내년 가을부터 미국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로 취임하는 데 이어, 이듬해인 2009년에는 영국의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예술 감독을 맡는 것이다.

그가 오는 6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서울시향 정기 연주회의 지휘봉을 잡기 위해 내한, 3일 기자회견을 가졌다. 뒤트와가 서울시향을 지휘하는 것은 1974년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협연한 이후 33년 만이다.

그는 “지금도 한 해 140여 차례의 연주회를 열고 있으며, 지난해 로열필과의 미국 투어 때는 24일간 21차례의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고 말했다.

뒤트와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로열필의 상임지휘자를 맡기로 한 것에 대해 “여러 교향악단을 객원 지휘하는 일을 줄이고 책임 있는 직책에 좀 더 집중하려는 것일 뿐 지휘라는 일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우리에게 뒤트와는 음반사 데카(Decca)를 통해 나왔던 정경화의 멘델스존·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에서 지휘를 맡은 것으로 친숙하다. 한국인이 세계 굴지의 음반사에서 음반을 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하던 시절, 우리 연주자의 음반 녹음 때마다 뒤트와가 있었다. 그는 정명훈, 정명화, 사라 장(장영주), 장한나, 조수미 등 함께 연주한 한국 음악가의 녹음 및 협연 연도와 주소까지 줄줄이 기억하고 있었다. “사라 장이 태어나기도 전, 제가 서울에 왔을 때, 그의 아버지는 KBS교향악단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죠. 장한나가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카네기 홀에 데뷔할 때는 제가 몬트리올 심포니를 지휘했죠.”

그는 정명훈이 피아노를 연주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의 ‘스페인 교향곡’(랄로) 등 한국 음악인들과도 수많은 음반을 남겼다.

짙은 선글라스와 분홍빛 스웨터 차림으로 내한해서 서울시향과의 첫 리허설을 마친 그는 “국제 무대에서 교육받고 경험을 쌓은 아시아 연주자들이 속속 고국으로 돌아오면서 한국·일본·중국 등 아시아 오케스트라의 미래도 더 밝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세계 주요 오케스트라마다 20~30대 젊은 지휘자들이 상임 지휘자로 취임하면서 클래식 음악계는 격렬한 ‘세대 교체’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 ‘노장’은 경륜 있는 지휘자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함을 강조했다.

이번 연주회에서 그는 라벨의 ‘어미 거위’ 모음곡과 ‘다프니스와 클로에’, 스트라빈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협연 샹탈 주이에)를 들려준다. 뒤트와는 “두 오케스트라 지휘자 임기가 끝나는 2012년쯤에는 은퇴해서 요리나 다른 일에 집중하고 싶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