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으로 와 주실거죠”

어릴 적 장난감 매장을 지나가면 어디선가 칭얼대는 목소리가 들리곤 했다. 아이들의 발걸음을 붙잡는 건, 가슴팍에 붉은 V자가 두드러진 모형 로봇.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사람~, 무쇠팔~ 무쇠다리, 로케트 주먹~”을 불러젖히며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사달라고 매달리던 그 광경은 익숙한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수영장을 볼 때마다 물길을 가르고 나타나지 않을까 손꼽아 기다리게 만들었던 그 ‘무쇠 사람’은, ‘영웅’이라는 칭호보단 흑백TV가 컬러로 바뀔 때도 그다지 변치 않는 모습으로 우리 곁을 지킨 ‘단짝 친구’에 가까웠다. 어느덧 초호화 변신 로봇들이 그를 대신해 아이들의 손에 들려 있게 됐지만, 그래도 여전히 ‘무쇠팔 무쇠주먹~’은 입 속에 맴돌곤 한다.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며 이젠 ‘키덜트(어린이의 감성을 추구하는 어른)들의 로망’으로 변해버린 그 ‘마징가 Z’가 한 세대를 지나 다시 국내에 상륙했다.

그를 추억하는 사람들은 오는 12일부터 21일까지 부천 시민회관 등지에서 열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PiFAN·www.pifan.com)를 찾아보자. 마징가 Z를 비롯해 큐티허니, 데빌맨 등을 탄생시킨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나가이 고(永井 豪)의 작품들이 이번 신설된 ‘애니 판타 상영작’ 부문에 ‘추억을 찾아서: 나가이 고와 로봇대전’이란 제목으로 기획됐다. 1972년 처음 등장한 TV 애니메이션 ‘마징가Z’의 후속 시리즈인 ‘마징카이저’(2003년) ‘강철신 지그’(2007년) 등 총 5편을 선보일 예정. 나가이 고는 영화제 기간에 단편 부문 심사위원 자격으로 직접 부천을 방문해 팬 사인회와 원화 전시회도 열 계획이다.

총 33개국 영화 215편(장편 124편, 단편 91편)이 상영될 이번 영화제의 개막작엔 황규덕 감독, 정경호 김민선 주연의 ‘별빛 속으로’가, 폐막작엔 조코 안와르 감독의 ‘비밀 Kala’가 선정됐다. ‘마쓰가네 난사사건’ ‘13’ ‘그림자’ 등 부천초이스 장편에 선정된 작품(9개국 10편)들은 작품상, 감독상, 남녀 주연상 등 총 6개 부문의 시상을 놓고 경합한다.

또 ‘지옥으로 향하는 뒷문’ 등 미국 B급 영화의 대가 몬텔 헬만의 회고전과, 누벨바그 감독들의 SF영화를 모은 ‘프랑스 SF특별전’도 눈에 띈다. 특수 분장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부대 행사로 마련된 ‘환상교실: 아시아영화의 특수분장’에 참가 신청하는 것도 좋다. ‘친절한 금자씨’ ‘괴물’ 등을 작업한 국내 회사 ‘셀’과 B급 호러 분장으로 유명한 일본의 ‘니시무라 공작소’, 성룡이나 주성치 등과 오래 작업한 홍콩의 미셸 왕의 지도로 특수분장 제작 과정을 배워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