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렌즈… 그 사이의 고민들

삼성미술관 리움이 선보인 ‘국제현대사진전―플래시 큐브(Flash Cube)’는 지금 현재 사진예술의 미학적 문제를 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초청 큐레이터 헹크 슬라거는, ‘건축적 공간’을 키워드로 다양한 층위의 작업들을 보여주는 것 같은 효과를 냈지만, 실제론 두 가지 이질적 전시를 한데 섞은 모습이다.

21명의 참여 작가들은 대략 두 종류로 나뉜다. 첫째, 비주관적인 태도로 건축물을 촬영해 연작을 만듦으로써, 하나의 ‘사진 가문’을 형성하고 있는 사진가들. 둘째, 개념적 미술의 방법을 빌린 사진으로 ‘사회 비판의 제스처’를 취하는 작가들이다.

미술사적 의미로 따지자면, 첫 번째 작가들이 중요하다. 제프 월,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토마스 루프, 토마스 데만트 등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함께 전시 중인 국내 작가 가운데 김상길도 작업 분류상 이쪽에 속한다. 작품으로 보자면, 국제주의 양식의 건물 입면을 촬영한 구르스키의 대형 프린트 ‘파리, 몽파르나스’나, 미즈 반 데어 로에가 디자인한 역사적 건축을 기록한 루프의 연작 등이 예술 애호가들의 이목을 끈다. 현대인의 삶을 규정하는 기계적 도시 조직을 탈인간적 시선으로 기록해낸 거장들의 대표작이니, 당연 눈여겨 볼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로 김상길의 ‘디스플레이_리움, 삼성미술관 #03’을 꼽겠다. ‘디스플레이’는 건축에 기생하는 기계 장치들을 기록하는 프로젝트다. 이번엔, 리움의 작품 안내 시스템을 중계하는 서버를, 냉정한 건축 사진의 형식으로 촬영했다. 본디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은 채, 음성·문자 정보 DB를 통해 관객의 공간 경험을 재규정하는 묘한 일을 하는 기계다. 그런데 그 사진이 리움의 관객 앞에 보란 듯 제시됐다. 특별한 조우가 아닐 수 없다.

반면, 미크 반 드 부르크, 노리토시 히라카와, 요나스 달버그, 양혜규 등은 두 번째 그룹에 속한다. 전시 기획자가 선호하는 작가들임에 틀림없겠으나, 이들의 미술사적 위치는 불확실하다. 게다가 몇몇 사회 비판적 작품은, 거대기업이 운영하는 미술관에서 한층 더 무기력해 보인다.

작품 섭외나 배치에서 아쉬운 점도 있다. 최근 뉴욕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가진 월이나 평단과 시장 모두에서 저평가된 회퍼의 경우 구색 맞추기로 소품이 전시돼 작가들의 진면목을 가늠하기 어렵다. 대가 데만트를 나이가 젊다고 저평가한 것도 실례다. 종이로 모형 공간을 만든 뒤 이것을 촬영하는 데만트는, 미메시스(모방)를 통해 미메시스를 극복한 대가다. 월이 ‘미술의 병균’이라고 표현한 미메시스는, 미술을 문학이나 음악에 비해 저열한 예술로 만드는, 특히 사진을 리얼리즘의 한계에 묶어두는 족쇄 노릇을 했다. 데만트 같은 대가들에겐 그 미메시스의 족쇄를 벗어 던진 공이 있고, 대가가 아닌 이들에겐 벗어 던지지 못한 과가 있다. 이번 전시는 우리가 그 공과를 바탕으로 ‘사진의 당대성’이 무엇인지 질문할 좋은 기회다. ▶9월30일까지 삼성미술관 리움. 일반 7000원 초·중고생 4000원. (02)2014-6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