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콘서트홀을 통째로 옮기다니!

지난 7일 중국 상하이(上海)의 옌안둥루(延安東路). 초고층 빌딩 숲이 빽빽한 시내 중심가 한복판에 70여 년 역사의 콘서트 홀인 ‘상하이 음악청(音樂廳)’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루종일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음악 홀의 문이 열리자 중국 관객 1200여 명이 차례로 입장했다. 1879년 창단한 ‘상하이 퍼블릭 밴드’를 모태(母胎)로 올해 129년째를 맞은 상하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시즌 마지막 연주회였다.

1930년대 영화관으로 쓰이다가 1950년대 개조한 이 콘서트 홀은 낡고 비좁았다. 조명 시설이 충분하지 않아, 마치 옛 영화관의 영사기처럼 2층 위쪽에서 무대를 향해 불빛을 비추고 있었다. 제1 바이올린과 첼로 단원들은 좁은 무대의 끝에 쪼그리다시피 앉아서 연주했다. 이날 상하이 심포니의 연주곡은 올해로 탄생 150주년을 맞은 영국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Elgar·1857~1934) 작품으로 채워졌다.

프랑스 출신의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은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협연했고, 뒤이어 교향곡 1번이 울려퍼졌다. 화려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작곡가 특유의 소박하고 정직한 멋이 교향악단의 선율에도 그대로 배어 있었다.

1930년대 건립 이후,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과 줄리아드 현악 4중주단과 같은 명 연주자들이 이 음악 홀을 거쳐갔다. 세계적 음반사 도이치그라모폰(DG)을 통해 활동하는 첼리스트 지안 왕이 14세 때 상하이 심포니와 협연했던 흑백 사진도 공연장 한 편에 걸려 있다. 상하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이 음악홀은 반 세기 이상 서로 호흡을 맞춰왔다.

2002년 이 공연장에 위기가 찾아왔다. 상하이 푸둥(浦東) 지구 개발이 속도를 내면서 도심과 신도시 지역을 잇는 공연장 곁에 고가도로가 건립됐다. 교통 소음이 문제가 됐고, 자연스럽게 철거 계획이 나왔다. 상하이 음악 팬들의 반대가 거셌다. 상하이 심포니 음악 감독인 지휘자 천셰양(陳燮陽)씨는 “상하이의 기념물이자 소중한 문화 유산인 음악홀을 개발 때문에 헐어버릴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 때부터 상하이의 ‘우공이산(愚公移山·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뜻의 중국 고사)’이 시작됐다.

그해 12월 공연장 전체를 옮기는 공사의 준공식이 열렸다. 전체 면적 1250㎡에 무게만 5850?에 이르는 이 건물을 3.38m가량 들어올리기 위해 대형 특수 지게차 59대가 동원됐다. 이듬해 6월에는 2주에 걸쳐 이 건물을 조금씩 옮겨나갔다. 결국 이 콘서트 홀은 66m가량 이동한 뒤, 2004년 10월 재개관했다.

푸둥 지구에 오페라 극장과 전용 콘서트홀, 소극장을 갖춘 현대식 공연장인 ‘동방예술중심(東方藝術中心)’이 문을 열면서, 상하이 심포니도 두 음악 홀을 번갈아 가며 연주회를 연다.

하지만 70년 역사의 ‘상하이 음악청’에는 새로운 ‘임무’가 생겼다. 상하이 심포니가 매달 두 차례씩 일요일 아침마다 공개 실황 음악회를 이곳에서 열고 있는 것이다. 이 콘서트는 상하이 TV를 통해 생중계되고 있으며, 최고 입장료가 50위안(6000원)에 불과해 음악회 대부분이 매진을 이룰 정도로 인기가 높다.

상하이 심포니의 천광셴(陳光憲) 총경리(행정 감독)는 “상하이뿐 아니라 난징과 항저우에서도 이 콘서트를 보기 위해 건너온다”고 말했다. 중국의 클래식 음악 저변 확대에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상하이는 유서 깊은 건물을 손쉽게 헐어버리는 대신, 역사와 공존하는 법을 택했다.

▶상하이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말러 교향곡 8번 ‘천인(千人) 교향곡’, 8월 23일 예술의전당, 2만~15만원, (02)6303-1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