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주실처럼 섬세하게, 벨벳처럼 부드럽게…

  • 장일범 음악 평론가·KBS 클래식 FM ‘장일범의 생생클래식’ 진행자

    입력 : 2007.07.12 00:35 | 수정 : 2007.07.12 04:37

    조슈아 벨 리사이틀

    10일 예술의전당에서 리사이틀을 가진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왼쪽)과 피아니스트 사이먼 멀리건. /크레디아 제공
    “사랑해요, 조시(I love you, Josh).”

    객석에서 갑자기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Joshua Bell)을 향해 뜨거운 애정을 표시하자, 연주자도 멋쩍은 미소와 함께 두 팔을 들어올렸다.

    잠시 후 조슈아 벨은 “멋진 영어군요(Nice English)”라고 화답했고, 객석에선 다시 웃음이 일었다. 1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3년 만에 열린 조슈아 벨의 리사이틀 무대였다.

    조슈아 벨의 연주를 듣는 것은 꽃이 만발한 동산을 거니는 것과 같았다. 조슈아 벨이 춤추듯 활을 놀리자 모든 음악은 예쁘게 변했다. 그의 탐미적이고 빈틈없는 연주는 추하고 거친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날 리사이틀에서 그는 마치 서정적인 리릭(lyric) 테너가 벨칸토 오페라를 노래하는 것처럼 명확하고 우아한 라인으로 깨끗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조슈아 벨을 더욱 빛나게 해준 이는 피아니스트 사이먼 멀리건이었다.

    첫 곡으로 선택한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의 2악장 아다지오에서 9년간의 파트너십(partnership)이 빛을 발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대화는 서정적이고도 고요한 풍경화처럼 청중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이어진 생상의 소나타 1번 1·2악장에서 조슈아 벨이 자신의 명기 1713년산(産) 스트라디바리로 들려준 소리는 누에고치에서 명주실 뽑아내듯 섬세했다.

    2부에서 들려준 라벨의 ‘치간느’에서는 자신이 음악을 맡아 녹음에 참여했던 영화 ‘레드 바이올린’에서 튀어나온 듯 그동안 들려주지 않았던 색다른 음색과 볼륨감 있는 연주로 곡을 요리했다. 조슈아 벨은 다채로운 색채나 드라마틱한 표현력보다는 시종일관 부드럽고 우아한 벨벳 사운드에 치중했다.

    특히 청중에게 직접 곡목을 말한 뒤 연주한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즈’와 멕시코 작곡가 마누엘 마리아 폰세의 ‘에스트렐리타(Estrellita·내 작은 별)’에서 그의 우아함은 두드러졌다. 선 굵거나 저돌적이기보다는, 잘생긴 귀공자 풍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