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촉한 시선] 주식시장선 실패한 영화계 CEO

지난주 충무로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인물은 강제규, 이은, 심재명씨였다. 거래소 상장회사인 영화사 MK픽처스의 최대주주이자 최고경영진인 이 세 사람이 지난 5일 강원방송 대주주인 김영균씨 등에게 총 150억 원을 받기로 하고 1296만주(약 29%)에 달하는 개인지분과 경영권을 모두 팔았다는 사실을 금융감독위원회에 공시(公示)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지난주 화제의 인물로 한정하기에는 어색한 부분이 있다. 세 사람은 이미 오래 전부터 스타 감독·스타 PD였다. ‘태극기 휘날리며’(2003)의 강제규 감독이야 말할 것도 없고, 부부인 이은, 심재명씨 역시 ‘접속’(1997) ‘JSA 공동경비구역’(2000)을 대표작으로 ‘바람난 가족’(2003) ‘그때 그 사람들’(2005) 등 한국영화사에서 한 획을 그은 작품을 제작한 명 프로듀서다. 최근 10년간 한국영화가 이룬 성취를 이야기할 때, 이들의 역할을 빼놓고 서술하기란 불가능할 만큼 재능과 열정을 두루 갖춘 인물들이라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결국 영화계가 예전 같지 않은 탓에 영화계의 거물들이 자사 주식을 남에게 팔아넘길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에 대한 동정적 시선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주식시장에서는 실패한 CEO가 됐다.

MK픽처스는 2004년 1월, 당시에는 영화와는 전혀 상관없는 공구(工具)를 만드는 세신버팔로라는 이름으로 우회 상장했다. 오늘날 한국영화 부실의 원인으로까지 일컬어지는 영화사 우회상장 붐의 신호탄이었다. 당시만 해도 이런 우울한 결과로 마지막을 맞으리라고는 짐작도 못했었고, 영화산업의 합리적 구조 확립에 기여하리라는 낙관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영화계만의 낙관으로 끝나버렸고, 결국 일반 투자자에게는 손해를 끼치고 만 것이다. 상장 당시 폭등하며 4300원까지 올랐던 주식값은 최근 1년 사이에는 1000원 안팎에서 횡보를 계속했고, 12일 현재 가격은 1050원.

회사의 부실 탓에 투자자는 손해를 봤는데 최대주주만 목돈을 챙겼다는 비난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담당하는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최근 1년간 주식 동향이나 시가총액을 보면 이들이 그런 비난을 받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또 다른 애널리스트는 “어차피 엔터테인먼트 기업은 스타 CEO나 스타 배우 등 핵심 역량의 신상변화가 주가에 반영되는 게 특징”이라면서 “법적으로는 모르겠지만 도덕적으로는 비난 받을 소지가 크다”고 비판했다. 그는 영화사를 주식시장에 우회상장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극단적 표현까지 썼다. 주식회사는 투자자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게 존재 목적인데, 우회상장은 그보다는 증자를 통한 자본확보가 목적이기 때문에, 동기 자체가 불순한 기업이라는 것이다.

150억 원이라는 액수에 대해서도 충무로에서는 말이 많다. 제조업처럼 물리적 자산이 있는 것도 아닌 마당에 터무니없이 큰 액수라는 질투부터, 사실은 나중에 상당액을 되돌려주고 판권과 경영권을 되돌려 받는 옵션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까지. 이런 모든 의혹에 대해 이은 대표는 전화통화에서 “현재로서는 한동안 강원방송 측과 함께 열심히 영화를 만들겠다는 약속 뿐, 다른 부분은 공시 사항이기 때문에 밝힐 수 없다. 이해해달라”고만 밝혔다. 부디 이들이 확보한 150억 원이 새로운 한국영화를 만드는 데 의미 있는 에너지원으로 작용하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