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튜바, 뜨거워서 시원한 트럼펫…

맨 왼쪽의 트럼펫 주자가 악기를 입에 물고서 고개를 끄덕이자, 노란 금빛의 금관 물결이 무대 위로 퍼져갔다. 지휘자 없이 12개의 금관 악기는 눈짓과 몸짓으로 호흡을 맞춰갔다. 15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베를린 필하모닉 금관 앙상블’의 내한 무대였다.

바흐의 칸타타 ‘예수는 인간의 소망 기쁨 되시니’부터 비제의 ‘카르멘 모음곡’까지―. 우리에게 친숙한 곡들을 브라스(brass)만으로 얼마든지 연주할 수 있다는 건, 독특하면서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베를린 필의 전·현직 수석 연주자와 단원을 중심으로 한 이 앙상블은 1950년대에 결성됐다. 30여 개에 이르는 베를린 필의 자체 실내악 단체 중에서도 유서 깊은 단체에 속한다.

유럽 남부의 뜨거운 박자감을 금관으로 그대로 담아낸 2부 첫 곡의 ‘카르멘 모음곡’은 이날 콘서트의 하이라이트였다.

낮고 둔중한 튜바가 리듬감을 만들어내자, 트럼펫이 카르멘의 아리아 ‘하바네라’의 주(主)선율을 연주했고 호른이 그대로 멜로디를 이어받았다. 타악이나 현악의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입체감을 빚어낼 수 있다는 걸, 관악 주자들은 무대에서 보여줬다.

지휘자 카라얀 시절에 입단한 트롬본 수석(크리스트하르트 괴슬링)과 현재 음악 감독인 사이먼 래틀 취임 이후 지난해 입단한 신입 단원(토마스 라이엔데커)이 ‘트롬본 4중주’를 통해 서로 호흡을 맞췄다. 사반세기(四半世紀) 가까이 차이가 나는 트롬본 단원들의 앙상블에서 ‘최강 악단’ 합주력의 비결을 엿볼 수 있었다.

금관은 다른 여느 악기 못지 않게 체력 소모가 극심하기에 휴식 시간이 평소(15분)보다 5분 정도 길었다. 다만 연주 시간이 2시간에 다소 못 미친 점이 다소 아쉬웠다.

하지만 바흐의 칸타타를 통해 금관의 ‘따뜻함’을, 비제를 통해 금관의 ‘뜨거움’을, 글렌 밀러의 영화 음악을 통해서는 금관의 ‘유쾌함’을 모두 보여줬다. 여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악기가 금관이라는 걸 체감할 수 있었던 ‘시원한 콘서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