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구 치고 기타 치고 세상을 치고

원일(40)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태평소와 피리를 전공하고, 영화 음악과 때로는 가요 음반을 통해 ‘전방위 활동’을 펼치고 있는 국악인이다. 1996년 장선우 감독의 영화 ‘꽃잎’을 시작으로 ‘아름다운 시절’ ‘강원도의 힘’ ‘이재수의 난’, 올해 개봉한 ‘황진이’까지 영화 음악들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쳐갔다.

‘꽃잎’의 영화 음악을 작업하고 있던 10여 년 전, 장 감독의 아들이 대학로에서 밴드 공연을 하고 있다는 말에 원씨는 뚜벅뚜벅 대학로 소극장으로 향했다. 고교생들로 구성된 밴드에서 초등학교 6학년생 꼬마 1명이 기타를 치더니, 베이스 기타를 손에 잡고, 다시 키보드로 자리를 옮겨서 연주하기 시작했다. 원씨는 “그렇게 구성이 없는 팀은 처음 봤다”고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 초등생을 점찍었다.

소년이 중학교 2학년생이 되던 무렵, 원씨는 자신의 영화 음악을 하나씩 맡기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시절’에서는 피아노를, ‘강원도의 힘’에서는 기타를, ‘원더풀 데이즈’에서는 오케스트라 음악의 작곡·편곡까지 맡아나갔다.

소년은 어느덧 청년이 됐다. 기타·베이스 기타·드럼·건반과 같은 기본적 악기(?)는 물론이고 하모니카와 스크래칭, 톱썰기와 인도 악기 시타르까지 10여 개의 악기를 연주하며 음반 프로듀서로도 활동하고 있는 정재일(25)씨다. 한상원밴드와 긱스(Gigs)에서 베이스 기타를 맡은 것으로도 친숙하다.

국악계의 ‘멀티 플레이어’와 가요계의 ‘음악 신동’이 만났다. 원씨가 리더를 맡고 있는 국악 그룹 ‘푸리’에 정씨가 합류해 최근 2집 음반을 펴냈다.

도포를 훌훌 벗어던진 크로스오버 국악 그룹들이 만개(滿開)하고 있지만, ‘푸리’의 구성은 조금 독특하다. 원일(타악·태평소·피리), 김웅식(타악·구음), 한승석(타악·판소리) 등 국악에 바탕을 둔 3명의 멤버들이 타악을 중심으로 우리 소리를 풀어가면, 정재일씨는 기타와 베이스 기타, 프로그래밍으로 현대적인 소리들을 씌워나간다. 마치 농담(濃淡)으로만 산수를 표현하던 수묵화에 화려한 색을 입힌 채색 수묵화처럼 우리 소리도 그렇게 깨어난다.

이번 음반에 실린 ‘자룡 활 쏘다’는 판소리 ‘적벽가’에서 가장 박진감 넘치는 대목 가운데 하나인 ‘조자룡 활 쏘는 대목’을 재구성했다. 소리꾼이 고수의 북 하나에 기대어 청중을 웃고 울리던 대목을, 각종 타악기와 피아노를 입혀서 한껏 다이나믹함을 증폭시켰다. 소리로만 알고 있던 판소리가 현대적 드라마로 새롭게 깨어난다.

원씨는 “전통에 기반하되 그대로 하지 않고, 우리 음악의 현대화를 꾀하되 쉽고 편하게만 들리는 음악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 고집”이라고 말했다.

정재일씨는 ‘푸리’ 공연에서 때로 사물놀이 팀처럼 앉아서 기타와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기도 한다. 그는 “양반 다리로 앉아서 연주하면 다리도 아프고 힘들지만 베이스 기타로 우리 장단을 풀어내는 듯한 재미가 있다”고 했다. 15세에 현대 음악제에서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을 처음 보고서 “세상에서 가장 느린 호흡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 장엄함에 넋을 잃었다”고 말했다.

음악이든 삶이든 맺혔던 것을 풀어낸다는 뜻을 지닌 조어(造語)인 ‘푸리’는 이달 말 일본의 후지 록 페스티벌에 초청 받아 우리의 신명 나는 장단을 열도(列島)에 울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