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발레리나’될 뻔했죠

발레리나는 무대에서 오로지 몸으로 이야기하는데, 유니버설발레단(UBC) 수석무용수 강예나(32·사진)는 요즘 연습실에서 말을 하며 춤을 춘다. 다음달 초연하는 발레 뮤지컬 ‘심청’(8월 16~26일 유니버설아트센터) 때문이다. 발레 무용수로서는 낯선 경험이다. 황혜민과 심청 역을 나눠맡은 강예나는 “말할 때 나오는 에너지와 표현력은 손짓 발짓만 할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며 “이 작품이 귀중한 터닝 포인트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발레 뮤지컬 ‘심청’은 노래 형식을 발레 음악에 담아 이야기 전달력을 높인다. 창작 발레 ‘심청’을 대표 레퍼토리로 가지고 있는 UBC로서도 파격적인 시도다. 연출은 연극 ‘한여름 밤의 꿈’으로 영국 바비칸센터에 초청 받았던 극단 여행자의 양정웅이 맡았다. 강예나는 “클래식 ‘심청’이 살아 있는 동화책이라면 뮤지컬 ‘심청’은 현대적인 퍼포먼스 같은 느낌”이라며 “노래시키면 립싱크라도 할 각오였다”고 했다. 실제 공연에서 대사는 없다. 그런데도 연습 중 대사를 말하는 건 ‘온몸으로 연기했을 때의 표현력을 기억하려는’ 의도다.

1994년 한국인 최초로 러시아 키로프발레단에 입단한 그는 96년 21세의 나이로 UBC 주역을 맡다가 98년부터 6년간은 세계 정상급인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에서 활약했다. 밑바닥 군무(群舞)부터 시작해야 했던 ABT에서의 시간이 큰 재산이라고 했다. 강예나는 ABT 시절 왼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돼 무릎에 나사 두 개를 넣었다.

강예나는 여전히 매일 오전 9시가 조금 넘으면 제일 먼저 나와 연습실 불을 켜는 선배다. 눈총 받지 않을까. “가끔 먼저 온 후배들이 있으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요.” 최근 한 케이블 방송 사회자로도 데뷔한 그는 이제 연극에 출연하는 게 마지막 꿈이라고 했다. “발레 뮤지컬 ‘심청’이 강예나에게도 일종의 ‘눈뜸’이에요. 또 한 편의 발레라고 예상하고 오는 관객들도 눈이 휘둥그레지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