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요원, '화려한 휴가'서 광주 아픔 상징적 대변 박신애 열연

1980년 5월27일. 광주 시민군의 최후 항쟁이 있던 날 애절한 시내 가두방송을 했던 여성이 있었다. '계엄군이 쳐들어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아버지의 주검 앞에서 오열하는 어린이의 모습과 함께 그날의 아픔을 상징적으로 대변하게 된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영화 '화려한 휴가'(감독 김지훈)에서 이요원을 만나 재탄생했다. 이요원은 '박신애'라는 캐릭터를 통해 데뷔 후 최고의 연기를 펼치며, 관객들의 눈물을 쏙 빼 놓을 준비를 마쳤다.

열일곱살에 데뷔해 스물셋에 전격 결혼, 출산 후 컴백 등…. 이요원은 아직 팬들은 물론 많은 기자들에게도 미지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녀를 처음 만난 기자가 느낀 체감온도는 생각보다 높았다. 차갑고 도도하기보다는 칭찬에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달콤한 게 좋다"며 조각 케이크을 맛나게 먹는 '별 특별할 게 없는' 여성이었다.

이요원은 80년 4월9일 생이다. 광주 민주화항쟁이 일어났을 때 그녀는 고작 생후 한 달된 갓난 아기였을 터. 그럼에도 그녀는 마치 그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생생한 연기를 펼쳐보여 호평을 얻었다.

하지만 이같은 호연의 뒤에는 치열한 고민이 숨어 있었다. "보통 작품을 할 때는 한동안 극중 캐릭터에 빠져들곤 하는데, 이번에는 빠져들 수가 없었어요.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낯선 감정들을 표현해야 하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거든요. 그래도 연기가 잘 나왔다니 저로서는 다행이죠."

작품 선택에 신중하기로 이름난 그녀지만 '화려한 휴가'는 대번에 시나리오를 다 읽고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솔직히 어렵고 무거울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시나리오를 단숨에 다 읽었을 정도로 재미있더라구요. 안성기 김상경 등 쟁쟁한 선배님들이 출연한다는 점도 끌렸구요."

본인의 예상대로(?) 역사의 아픔을 다룬 영화였지만, 촬영 현장은 너무나 재미있었단다. 박철민의 쉴 새없이 뿜어져 나오는 애드리브에 웃었고, 안성기의 인품을 본받았다. 김상경은 이요원이 우울한 마음으로 촬영을 마치고 돌아갈 때, 처음으로 전화까지 해서 '(화면이) 잘 나올 것'이라고 토닥여준 선배였다.

새로운 경험도 많이 했다. 계엄군에 쫓기다 머리채를 쥐어잡혀 폭행당하는 장면의 촬영을 마치고는 거의 혼절하다시피 했다. 김상경의 터진 이마를 꿰매는 장면 역시 아찔했던 경험이었다. "이마 위에 인조 살갗을 붙이고 그대로 꿰매는데요. 가죽을 엎어놓고 연습을 하긴 했지만, 정면으로 마주본 상태에서 꿰매려니 정말 힘들더라구요." 그래도 그 때 경험 덕에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를 찍을 때는 잘 꿰맨다고 칭찬 깨나 받았단다.　이제 관심사는 오로지 흥행. '화려한 휴가' 관계자들뿐 아니라 모든 영화인들이 성공을 고대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유난히 최근 흥행 성적이 좋았던 이요원은 든든한 존재다. 　하지만 이요원은 손사래를 쳤다. "요즘 운이 좀 좋았나보죠. 20대 초반에는 잘 안 된 작품들도 많았는데… 그래도 이번 영화는 여러모로 꼭 잘 됐으면 합니다."

'우리를 기억해주세요!' 박신애가 광주시민들을 향해 외쳤듯, 이요원은 관객들에게 외치는 듯 했다. '화려한 휴가'를 꼭 기억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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