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국립오페라극장 재개관 50주년 ‘갈라 콘서트’

파괴하는데는 하루면 충분했지만, 복구하는데는 무려 10년이 걸렸다. 세계 2차 대전 종전(終戰)을 앞둔 1945년 3월, 오스트리아 빈에 연합군의 맹폭이 시작됐다. 140년 역사의 빈 슈타츠오퍼(빈 국립 오페라 극장) 건물도 정면 외곽과 입구만을 남겨놓은 채 대부분 폐허가 되고 말았다. 전쟁이 끝난 뒤 오스트리아 정계를 중심으로 복구 운동이 일어나지만, 정식 개관한 건 10년 뒤인 1955년 11월이다.

재개관 50주년을 맞아 지난 2005년 빈 슈타츠오퍼에서 기념 갈라 콘서트가 열렸다. 최근 이 실황 영상(DVD·유로아츠)이 국내 소개됐다.

음악 감독인 백발의 노장 오자와 세이지(72)는 지휘봉도, 악보도 없이 무대로 올라와 맨손으로 베토벤의 ‘레오노레 서곡 3번’을 지휘한다. 어깨 넓이로 두 다리를 벌리고 열정적으로 양 손을 휘두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지휘봉을 건네받는 주빈 메타(71)는 50년 전 재개관 당시 빈 국립 음대에서 수학하던 음악도였다. “이 오페라 극장에 티켓 없이 들어갈 방법을 궁리했지만 그 때마다 객석 안내원에게 쫓겨나곤 했다”고 웃음 짓던 이 학생은 어느덧 무대 중앙에서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명 지휘자로 변신했다. 그의 지휘봉에 맞춰 토마스 햄슨(바리톤), 에디타 그루베로바(소프라노) 같은 당대의 성악가들이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를 갈라 콘서트로 풀어낸다.

뮌헨 필하모닉을 이끌고 있는 크리스티안 틸레만, 로열 필하모닉의 음악 감독 다니엘레 가티, 2010년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음악 감독을 넘겨 받는 프란츠 벨저 뫼스트까지 갈라 콘서트에 출연한 지휘자의 명단은 묵직하기 그지 없다.

플라시도 도밍고(테너)와 아그네스 발차(메조 소프라노)는 베르디의 ‘아이다’에서 호흡을 맞춘다.

사랑에게 버림 받은 여인이 “하늘만이 내 눈물에 대신 복수해줄 것”이라고 처절하게 절규하면, 장군 라다메스는 “어떤 분노도 두렵지 않다”고 의연하게 노래한다. 당시 두 가수의 나이를 합치면 정확히 125세다. 이들의 열연에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오른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는 박수로 경의를 표한다.

출연 아티스트의 면면보다 더욱 의미 있는 건, 갈라 콘서트의 프로그램이다. 오페라 ‘피델리오’(베토벤) ‘장미의 기사’와 ‘그림자 없는 여인’(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바그너) ‘돈 조반니’와 ‘아이다’까지. 오페라의 주요 장면을 무대나 의상 없이 갈라 형식으로 공연한 작품들은 모두 50년 전 재개관 당시 무대에 올랐던 오페라들이다.

공연 중간의 영상 화면은 부지런히 반세기 전의 낡은 포스터와 흑백 공연 사진, 의상 스케치를 조명한다. 50년 전 폐허가 됐던 오페라 극장의 흑백 사진과 지금의 화려한 건물 전경을 대조하기도 한다.

단절 위기를 맞았던 빈 오페라의 역사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영상 자료다. 이 극장은 오는 9월 19~20일 예술의전당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콘서트 형식으로 올리며 첫 내한 공연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