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CGV가 발표한 올 상반기 한국 영화의 점유율은 47.3%. 이는 CGV가 자료 수집-발표를 시작한 지난 2002년 이후 최저치다. 이 수치가 시사하는 바는 간단하면서도 크다. 한때 한국영화의 점유율은 66.8%까지 치솟았다. 실제로 한동안 티켓부스에서 관객들의 우선 순위는 한국영화였다. 할리우드 영화들은 대단한 화제작이 아닌 이상 구매 고려 대상에서 2순위로 밀려났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영화가 2순위가 됐다. 관객들이 한국 영화를 외면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심각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한국영화의 현 주소는 어디일까.
지난해 한국영화는 91년 이후 최대치인 110편(이하 영화진흥위원회 발표 자료 기준)이 제작됐다. 물론 이처럼 유난히 많은 제작편수가 부실한 작품을 양산해냈고, 관객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큰 주범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너무나 가혹하게 나타나고 있다.
영진위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한국 영화 개봉편수는 총 74편. 지난해 총 개봉편수가 117편이었으니 수치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올 들어 새로이 제작에 들어가는 영화가 확연히 줄어들었다는 게 문제다. 투자 심리가 꽁꽁 얼어붙으니 영화를 만들 수가 없다. 올 들어 제작되고 있는 영화는 대략 40여편에 불과할 정도다. 그나마 이들 영화도 모두 정상적으로 크랭크업해서 개봉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 영화를 다 만들어 놓고도 배급-마케팅 비용이라도 아끼기 위해 필름을 그대로 사장시키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뚜렷이 진행하는 작품이 없으니 '책'(시나리오)만 쌓아놓고 개점 휴업 상태인 제작사들도 부지기수다. 돈이 들어올 데가 없으니 다양한 방식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제작사들은 각각 감원과 조직 구조 개편 등을 통해 '보릿고개' 나기에 여념이 없다.
영화세상 안동규 대표는 "투자할 곳이 없어 헤매던 자본들이 자취를 쏙 감췄다"며 "일부 영화사들이 충무로를 떠나 강남으로 넘어올 때 장사를 하던 사람들은 지금 빌딩을 다 올렸다. 그런데 영화하는 사람들은 사무실 유지를 걱정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탄했다.
한데 더 큰 문제는 이같은 어두운 상황에 서광이 비칠 조짐이 없다는 것이다.
메가박스의 매각만 해도 한국 영화계에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사실 그동안 쇼박스와 메가박스의 매각설은 꾸준히 흘러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한때 CJ를 제치고 한국영화 배급 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던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는 지난해 '전년 대비 매출액 3.98% 감소, 당기 순이익 53.94% 감소'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메가박스 역시 영업이익과 순이익 모두 완연한 감소세를 보였다.
물론 메가박스 측은 "매각 대금으로 좋은 영화 제작에 전념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이에 대해 많은 영화인들은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영화인은 "메가박스 매각을 오리온의 영화 사업 포기 수순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며 "특히 이번에 메가박스를 매입한 맥쿼리의 뒤에 직배사가 있다는 설까지 나돌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영화계에서는 직배사나 국내 이동통신사가 메가박스를 최종 인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어떤 식이 됐든 기존 영화계의 질서가 송두리째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시나리오다.
만일 직배사가 메가박스를 인수하면 할리우드 영화들은 보다 안정적인 스크린을 확보할 수 있는 반면, 우리 영화는 더욱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이동통신사가 인수하는 경우에도 통신산업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융합되는 희한한 형태의 산업이 창출될 전망이다. 한없는 어둠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있는 상황.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한국 영화의 우울한 현 주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