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 다시 웃다 KBS 교향악단과 함신익의 만남

말러의 교향곡을 듣는 건, 수십부작으로 이뤄진 대형 서사극을 보는 것과 같다. 많게는 수백명에 육박하는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필요한데다, 길게는 한 악장만 훌쩍 30여 분에 이른다. 한 악장이 하이든과 모차르트 시기의 웬만한 교향곡 전곡 길이와 비슷한 셈이다. 작곡가 자신도 교향곡 3번을 쓰면서 “이 곡은 전통에 전혀 맞지 않기에 교향곡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당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교향곡은 모든 기술적 수단을 통해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한 번 발을 딛고 나면 치명적일 정도로 아름답지만, 연주자에게는 ‘하나의 세계’를 그려내야 하는 부담이 적지 않다.

지난 27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KBS 교향악단 정기연주회에서 지휘자 함신익과 악단이 골라든 곡도 말러 교향곡 3번이었다. 교향악단 110여 명, 서울레이디스싱어즈와 숙명여대 합창단원 80여 명, 고양시립소년소녀합창단원 40여 명까지 230여 명이 콘서트 홀 무대를 가득 메웠다.

1악장부터 지휘자 함신익은 박자를 다소 느리게 잡아가며 진지하게 곡에 접근했다. ‘빠르냐 느리냐’보다 더 중요한 건 ‘얼마나 일관성을 유지하느냐’는 것이다. 함신익은 예의 열정적으로 지휘봉을 휘두르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말러에 다가갔다.

타악 연주자들은 1악장 중반 말 없이 무대 뒤편 복도로 나가고, 트럼펫 수석 안희찬도 3악장이 시작하기 전에 뒤편으로 나갔다. 말러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같은 후기 낭만파 시기의 작곡가들은 관현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마치 연극 같은 지시도 아끼지 않았다. 포스트 혼을 대신해서 무대 뒤편에서 연주한 안희찬의 3악장 코넷은 막사에서 잠들기 직전, 멀리 연병장에서 울리는 그 소리처럼 은은하고 아름다웠다. 고음으로 끌어올리다가 한 차례 호흡이 자연스럽지 못한 대목이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관악 협주곡’처럼 밝게 빛났다.

실수가 거의 없었던 트럼본을 비롯해 KBS 교향악단의 금관 파트는 국내 교향악단 가운데 가장 안정적인 편에 속했고, 강한 출력의 승용차에 앉은 것처럼 승차감이 편안했다. 1·4악장에서 호른이 조금 더 단단하게 버텨줬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았다.

부천 필하모닉의 임헌정과 대전시향 전 상임지휘자 함신익은 ‘말러 국산화’를 의욕적으로 이끌고 있다. 이들 덕분에 국내 교향악단의 레퍼토리 선택 범위가 넓어진 것이 사실이다. 관현악에서 독창으로, 합창에서 다시 관현악으로 돌아오는 까다로운 실타래를 함신익은 무리 없이 풀어냈다.

전반부 탄탄한 긴장을 유지하던 KBS 교향악단의 호흡은 마지막 6악장에서 계속 흐트러졌다. 관악 주자들이 때때로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였다. 감동을 모아내야 하는 대목에서 산만함은 안타깝기 그지 없었지만, 최선을 다하다가 나온 실수에는 책임을 묻기 힘들었다. 전체적으로 함신익과 KBS 교향악단의 만남은 ‘행복한 말러’라고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